검은 새
함태숙
해발 사천 미터, 정상에서 본 까마귀 한 마리
날개 칠 적마다 석탄가루 떨어진다
무너진 갱도 사방 한쪽을 밀어
수식으로 깎여나간 북벽
인간이 인간에게 합당치 못했던 일들이
제각기 광물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침목 위, 소금결정처럼 내려앉는 만년설
기억은 지표를 따라 이동하고
머리 위, 전혀 다른 시간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그 어느 막다른 곳으로부터 너는 와서
활강하는가? 비유여
각국에서 던진 탄성과 과자 부스러기
관광사진 속에 너는 무수히 찍혀 나오지만
그 검은 심장은 한 번도 꺼내진 적 없다
자유란 오로지 죽은 육체에만 매장되었다는 듯
날개란 단연코 제가 제바닥을 치고 오른 선언
융프라우 산 정상을 검은 새 한 마리가 제압한다
카악카악 울 때마다, 각혈하는 전망이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함태숙 시인이 15년 만에 첫 시집을 묶어 낸다. 시집 원고를 펼쳐 시인의 15년이란 시간의 소용돌이를 천천히 더듬어 보는 일, 그것은 '영혼'으로, '영혼'에 다다르는 쓸쓸한 길, 이어서 때로 쉽게 들어서지 못하는 일이 되기도 했음을 돌아본다./ 추측컨대 시인은 이 한 권의 시집으로 (15년 간 쓴) 그녀의 모든 시를 다 품어 안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선택지에서 시집에 온전히 들어오지 못한 그녀의 다른 시들을 이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의 시집 이후 시들을 상상한다. 어쩌면 이 시들은 그들을 불러 이어주는 진혼곡처럼 '영혼'을 위무하는 간곡한 시간의 망 안에 걸린 시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과연, 시인이 막닥뜨린 시적 순간과 상실의 언어들이, 명주실을 꿰어 한 벌의 옷을 엮듯 기워진 이 '영혼'의 '집'에서 하나같이 15년 '시간'의 영속과 만나는 '영혼'의 잔재를 담고 있어서 그 옷이 어떤 형태이든 광활한 우주의 시간 속으로 유영하며 이내 사라지길 아쉬워하고 있음을 재삼 느끼는 것이다. (전해수/ 문학평론가)
-------------
* 시집『새들은 창천에서 죽다』에서/ 2017. 7. 17. <한국문연>펴냄
* 함태숙/ 1969년 강원 강릉 출생, 2002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얼굴/ 김유섭 (0) | 2017.08.06 |
|---|---|
| 이슬이 비치다/ 권귀순 (1) | 2017.08.06 |
| 하루, 그 붉은 무덤/ 김밝은 (0) | 2017.08.05 |
| 무소식 외 2편/ 강우식 (0) | 2017.08.05 |
| 별빛 충전소/ 김기화 (0) | 2017.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