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세검정 동네에서 살기 40년/ 문영호

검지 정숙자 2017. 6. 28. 12:21

 

 

<수필>

 

 

    세검정 동네에서 살기 40년

 

    문영호/ 수필가

 

 

  세검정 동네에 살기 40년, 남들은 이사도 잘도 다니고 그 결과로 해서 더러의 경우 부를 축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지만 내 이 동네에 무슨 매력이 그리도  많아 40년을 버티고 살았는지 생각사록 아둔키만 하다.

  나처럼 시대에 둔감한 자를 두고 놀려대는 시쳇말에 '삼도 푼수'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으니 곧 "아직도 강북에 사시나요, 아직도 자동차가 없으신가요, 아직도 본처와 사시나요."가 그것이다. 그 시쳇말이 유행한 지 하마 수십 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삼도 푼수로 머물러 있으니 스님들이 보시행각을 하다가 황야 뽕나무 밑에 사흘 밤만 머물다보면 다시금 그 뽕나무 밑으로 찾아든다더니 내게도 그런 속성이 잠재되어 있는 탓일까.

  40여 년 전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주변은 꽤나 한적한 동네였고, 도둑마저도 외면한 동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신조 일당의 망상적 도발로 인한 후유증이 빚어낸 결과 탓이었다. 해서 버려진 동네요 살기를 기피하는 동네였다. 늦은 밤엔 택시기사도 가기를 꺼려하는 그런 동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중 가장 큰 비중은 수려한 주변 환경과 한적함이었다.

  붐봄철 새벽녘에 울어쌓는 장끼의 울음, 늦은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우는 두견새의 울음, 어디 그뿐인가. 초여름 깊은 밤, 가슴 한구석을 후벼대는 소쩍새 울음은 내 한스러움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집 앞 소나무 위에선 청설모가 깝죽거리며 오르내리고 축대 담쟁이 넝쿨 사이엔 능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기도 했다. 해서 이 동네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 다발들을 만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내 어찌 이 동네에 터 잡고 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런 동네가 이제는 잘도 변해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장마철이면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골목길은 덜덜대는 마을버스만이 매연을 뿜어대며 달리는 골목길이 되어 버렸다.

  사라져 간 것 중 가장 아쉬운 것은 새벽녘 장끼가 까투리를 부르는 소리다. 어릴 적 나는 이 장끼의 애절한  구애의 울음소리를 두고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다음과 같이 놀려대곤 했다. "꿩꿩 장서방 아들 낳고 딸 낳고 미역국에 밥 한술 낙지국에 술 한 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립고 아쉬움이 어찌 이뿐이랴, 한밤 한을 토해내는 소쩍새. 찢어지게 가난한 집 며느리 되어 굶어 죽은 넋이 소쩍새가 되어 운다는 새, 내 한스러움을 대곡代哭했었는데.

  이처럼 세검정 동네에 사라져 버린 것도 많지만 여전한 것도 있으니 우람한 인왕산 자락 암괴나 언제 보아도 그 자리에 우뚝한 북악산 봉우리다. 봄이 되면 바위산 틈새에 피어나는 진달래꽃, 여름철이면 칙칙한 숲새를 몰아가는 놋날 같은 빗줄기, 이월의 꽃보다 곱다는 단풍, 겨울철 간혹 가다 만나는 설경이 그것이다. 이 정경들은 아직도 세검정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황홀경이다. 게다가 여름철 장맛비라도 흠뻑 내린 세검천에 곤곤히 흐르는 계곡수는 힘참과 정갈함을 함께 가져다 준다. 이런 날 나는 천변이나 다리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살로 해서 바닥엔 허연 모래가 쌓이고 돌 틈새에 이제껏 끼어 있던 지저분한 이끼들은 일거에 사라지고 정갈스런 물줄기가 철철철 흘러가는 여기저기엔 버들치가 유유히 헤엄을 친다. 버들치는 맑은 물에 몸을 맡기고 희왜가리 한 마리 살금살금 물가를 걷는다. 이럴 때 버들치는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고 왜가리는 보다 번득이는 눈매로 이를 쫓는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망연히 바라본다. 이런 내 모습을 소재로 단원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단다면 아마도 '노부천변관어도老夫川邊觀語圖'라 할 것이다.

  세검천변의 정경은 이것만이 아니다. 초가을 싸락눈을 뿌려 놓은 것처럼 피어난 여뀌꽃. 화판이야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무리지어 피어난 정경은 흩뿌려진 싸락눈 그대로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여뀌꽃도 무리지어 피어나면 하얀 색감으로 해서 저리 청초한 정경이 되나 보다.

  세검정 동네가 지금보다 한적할 때 나와 함께 살았던 능구렁이, 소쩍새, 청설모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천변 정리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버들치, 해오라기, 오리 등은 나의 새로운 이웃이 되었다.

  유우석劉于錫은 「누실명陋室銘」말미에서 자신의 거처가 초라하지만 그래도  훌륭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주변엔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사당이 가깝게 위치하고 서쪽엔 양자운楊子雲을 기리는 정자가 있으니 내 집이 비록 누추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라고 끝을 맺는다.

  그렇다. 내가 사는 주변엔 이광수가 「무정」을 집필한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대원군의 별서였던 단포집과 한국현대서예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소전 손재형素箭 孫在馨이 사셨던 고가 한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금 떨어진 자하문 밖 무계원에는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의 산실로  추정되는 안평대군의 별장도 자리하고 있으니 아직 이 동네는 살 만하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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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인』 2017-여름<수필>에서

 * 문영호/ 1992년『창조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삼도 푼수의 넋두리』『편식 편견 그리고 죄악』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