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과목(果木)/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17. 7. 18. 16:21

 

 

    과목果木

 

    오세영

 

 

  정원 한구석에 뿌리 내린

  한 그루 배나무,

  누가 보아 주지 않아도 이 봄 스스로

  활짝 꽃을 피웠다.

  안쓰럽도록 하이얀 꽃잎,

  부드러운 듯 살짝 드러낸 그 가슴 속

  붉은 꽃 수술,

  자세히 보니 배나무도 꽃나무다.

  그러나

  과수원에 열 지어 서 있는 배나무를

  누군들 꽃나무라 여길 것인가.

  꽃나무는

  오와 열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

  꽃나무다.

  꽃나무는 획일적으로 무리지지 않아

  꽃나무다.

  꽃나무는

  재배되지 않아 꽃나무다.

  내 오늘

  정원의 홀로 핀 배꽃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날들을 헤아리나니

  탐욕과 허세를 좇아

  이곳저곳 잘리고, 베이고, 길들여져

  과수원의 일개 과목으로 살아온

  한생이 아니었더냐.

  아름다움이란

  홀로 있어 아름다움인 것을.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작품은 혼자 서서 꽃을 피운 배나무와 과수원에 획일적으로 배치된 배나무를 대비하고 있다. 시인의 앞마당에 혼자 서 있는 배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제법 흰 꽃잎과 붉은 수술이 달려 꽃의 모양을 제대로 보여 준다. 이렇게 혼자 피어 있는 배나무는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훌륭한 꽃나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과수원에 열 지어 서 있는 배나무는 꽃나무가 아니라고 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시인은 다시 의미의 리듬을 배치했다. 작품의 중간에 "꽃나무는"으로 시작되어 "재배되지 않아 꽃나무다"로 끝나는 일곱 개의 행이 그것이다. 이 의미의 리듬이 환기하는 것은 획일적으로 심어져 재배되는 것은 꽃나무가 아니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야 꽃나무라는 명제다./ 시인의 정원의 배나무를 보고 배나무도 아름다운 꽃나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꽃나무는 남의 뜻에 조정되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꽃을 피운다. 그러나 자신의 생을 돌이켜보니 세상의 이해관계에 휘말리고 다른 사람의 뜻에 맞게 길들여져 온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과수원의 과목처럼 타인에 의해 집단 사육된 존재인 것이다. 시인은 정원의 배나무를 보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깨달았다. 「과목」은 평범한 제목에 평범한 내용을 담았지만 인생의 예지와 통찰이 농축된 존재 탐구의 작품이다. (이숭원/ 문학평론가)

 

 

    --------------

  * 시집『북양항로』2017.5.23. <(주)민음사> 펴냄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5~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봄은 전쟁처럼』『바람이 아들들』외, 학술서『시론』『한국 낭만주의시 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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