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산실>
산골 자연과 보내는 한 시절
홍신선
"그 외진 산골에 들어가 어떻게 살어?"
"괜찮습니다. 오래 한 대학 선생 덕 보는 건 혼자서도 잘 논다는 거지요. 아마 저 혼자서도 잘 놀 겁니다."
얼마 전 집안 형님 한 분을 만나 여러 얘기 끝에 이런 수작을 나누었다. 선대先代 조고祖考의 묘하墓下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귀촌을 한 다음이었다. 동탄 신도시에서 쫓겨나올 때 우리 집안은 이곳 산골로 선대 조고들을 모시고 내려왔다. 그리고 십수 년을 지나 나는 학교일을 접었고 백수 노릇도 그만 지겨워진 끝에 이 마을로 낙향한 것이었다. 덩달아 학교 일할 때 보던 각종 자료와 책, 잡지들도 여기에 와 비로소 제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책짐들인데 역시 나를 따라와 정착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껏 막연하게 무엇엔가 쫓긴다는 도시적 삶의 강박도 이곳에 와 나는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하루의 긴 시간 대부분을 혼자서 놀며 사는 팔자가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간들을 나는 유실수를 비롯한 나무들 가꾸기나 터앝 일구는 일로 메운다. 그 탓일까. 나는 새삼 이곳의 새와 짐승, 나무들을 각별하게 지켜보게끔 되었다. 뿐만인가. 아침저녁 놀과 달, 별들의 전에 몰랐던 품새와 움직임과도 만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들, 자연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이즘 작품들 속에 두루 자리잡는다. 겸해서 졸시에다 "앞산 하늘 끝 노을을 아내삼고 뒷산 고라니를 자식 삼네" 하는 허황한 수작까지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송나라 때 시와 그림만을 그렸던 전업시인 임포林浦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은거지의 매화를 아내로 삼고 두루미鶴를 자식 삼아 살았다고 한다. 또 죽을 때는 생평에 썼던 시와 그림을 모두 불살랐다고도 한다. 그렇다. 저 철저한 은일의 삶을, 그 흫취를 내 어찌 감히 흉내라도 낼 터인가. 그렇긴 해도 마지막 생을 위해 들어온 이 산골 자연공간이야말로 내 말년의 창작산실이 아닐 것인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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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文學』 2017-6월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에서
* 홍신선/ 1944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1977년 노향림과 함께 쓴『실과 바늘의 악장』, 시집『서벽당집』『삶의 옹이』등, 시선집『삶, 거듭 살아도』『사람이 사람에게』등, 시전집『홍신선 시전집』, 연작시집『마음經』, 시론집『상상력과 현실』『한국시의 논리』등, 산문집 『말의 결 삶의 결』, 계간 『문학 선』간행, 천상병문학상 · 김달진문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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