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최서진_희망, 혹은 절망을 품은 내면 풍경(발췌)/ 사막의 저녁 : 이선유

검지 정숙자 2017. 6. 16. 01:41

 

 

    사막의 저녁

 

    이선유

 

 

  먹빛을 거느린 밤은 왜 이리 먼가

  너무 밝아 어두운 대낮의 거리는 왜 이리 아득한가

  높은 빌딩은 그에게 더 큰 그늘을 안겨 줄 뿐

 

  별이 뜨지 않는 지하방

  골목에 버려진 폐지는 이곳으로  모여들고

  끼니마다 한 움큼의 모래바람이 지나갔다

 

  오래전 흩어진 가족들

  이 사막에서 족적을 찾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닫힌 입처럼

  귓문을 닫아버린 그의 얼굴에 그늘 꽃이 피었다

 

  아무도 그의 비루한 앞날을 묻지 않았다

  막다른 구석마다 눅눅한 옷가지들

  몇 겹을 껴입고도 냉기에 떨었다

  그때마다 모래바람에 눈앞이 흐려지고

  그는 사구에 잠기고 있었다

 

  늙은 낙타 한 마리

  오래도록 발효된 시간을 끌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

 

  제 주검을 끌고

  멀고 먼 오아시스로 떠나는 그 앞에

  모처럼 골목이 들썩거린다

    - 전문- 

 

   

  '희망' 혹은 절망을 품은 내면 풍경(발췌)_ 최서진

  시는 불행을 노래하기에 적합한 장르다. "늙은 낙타 한 마리/ 오래도록 발효된 시간을 끌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간을 응시한다. 이 또한 내면에 존재하는 "사막의 저녁"을 삭막한 고백의 방식을 선택해 엉킨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휘몰아치며 안으로만 깊어지던 시선을 시인은 시적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막다른 구석마다 눅눅한 옷가지들"의 기억은 "몇 겹을 껴입고도 냉기에 떨었"던 시간을 호명한다. 그것은 불안한 진동을 감지하며 삶을 폐쇄시켰던 것이다. 무엇이 오랜 시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을까. 낙타를 가두어 놓은 것은 사막의 환경적 시간이다. "높은 빌딩은 그에게 더 큰 그늘을 안겨 줄 뿐"이다. 잡히지 않는 수많은 자아의 불안이 기록하는 발자국들이 "별이 뜨지 않는 지하방"으로 형상화된다. '그늘 꽃'이란 이미지가 견인해 내듯, 지하의 삶을 반영하며 어둡고 무거웠던 존재의 시간을 보여준다. "늙은 낙타 한 마리"는 적막한 길을 걸어 나온다. 낙타의 아픈 시간을 더듬으며, 낙타의 삶을 공감과 연민의 눈빛으로 뒤따라가고 있다. "멀고 먼 오아시스로 떠나는 그 앞에/ 모처럼 골목이 들썩거"리는 형상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길 끝에는 꽃향기가 있기도 하는 법. 터널을 빠져나와 자신의 몸을 찾고, 신발을 찾는 분주한 시간 앞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다. 가파른 벼랑 끝에 앉아 두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울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일 것이다. 사막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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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2017-여름호 <책속의 작은 시집> 에서

   * 이선유/ 충남 청양 출생, 2016년『창작 21』로 등단

   * 최서진/ 충남 보령 출생, 2004년『심상』으로 등단,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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