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삶은 흔적을 만든 후 더러는 잊는 것이다
김기수
1
첫발부터 삶은 동토를 딛는 것이다
가장 먼저 냉기를 맞이하고
심장보다 빨리 고통을 맞이하여
그토록 가고자 했던 길
갈 수 없는 안타까움, 그 책임을 묻는다
2
한 발 두 발 0.03초씩
발은 정확히 내딛는 현재를 모아
한 생의 시간을 만들며
우주로 한 발씩 내딛는 흔적으로
사랑의 결과를 잉태한다
너무나 크게 원했던
3
그녀에게 갔다
산 넘어 과거로 갔다
우주의 미래로 갔다
돌아오지 못함에 대하여
밤새 책임을 추궁당하고
앓아누웠다
그녀의 발도 앓아누웠다
4
우울함도 슬픔도 지울 수 있도록
발이 데려가는 과거
삶은 더러는 잊는 것이라고
잊을 만큼의 힘으로 흔적을 누벼놓는
그러나 추락하지 않도록 지탱하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도
여유롭게 잊을 건 잊도록
언제나 출발은 발에서 하는 것이라고
5
나무가 하늘을 지향하듯
발은 늘 어디론가 떠난다
무엇도 가질 수 없는 그런 모습이지만
삶을 향하여 떠난다
늘 사랑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난 자리로
그녀를 위하여 되돌아온다
6
오늘도 웃으며 한 해를 넘기자
넘어가는 달력 앞에서
결과 없는 성적표가 짓누른다
발등의 불이다
정확히 인식한 현실은
0.03초를 아까워한다
그러할수록
더 느리게 더 단단하게
사랑의 걸음을 점검해야 한다
7
언젠가는 내가 가야 할
우주이지만
발은 현실을 디뎌야 한다
공간에서 내려와
흙을 밟아야지
발이 흔적을 만들며
바삐
생의 걸음 걷는다
-전문-
* 인간이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의 시간이 0.03초라 함
해설> 한 문장: 시인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까닭은 세계를 인식하고 표출하는 방법의 차이 떄문이다. 오랜 습작을 거친 시인일수록 동일한 사물을 언어의 정보 전달 기능에 의한 해석에서 정서적이고 미적인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독특한 자기만의 사물인식과 해석을 하게 되는데 이를 그 시인만의 독특한 시 세계라 할 수 있다. (김관식/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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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별바라기』에서/ 2017. 3. 30. <도서출판 가온> 펴냄
* 김기수/ 충북 영동 출생, 카페 '시와 우주' 운영, 시집『별은 시가 되고, 시는 별이 되고』『북극성 가는 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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