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넘는 자의 것이다/ 정숙자

 

 

      산은 넘는 자의 것이다

    

      정숙자

   가다가 길이 막히면 거기서부터가 산이다

   산을 넘지 못하면 그 너머 길을 잇지 못한다

   평지에 허리를 감춘 산은 압구정동 네거리 거실 의자 중

환자실 침대 위에도 있다

   산을 허무는 일이야 산을 일으킨 바람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다

   갈수록 비탈일 수밖에 없다

   많은 이가 한 길을 함께 걸어도 그 길은 제가끔 다른 길

이다

   관점이 길을 바꾼다

   지상에 난 모든 길은 관점으로 가는 길이다

   산을 오래 타다보면 사람도 산이 되는지 얼굴 어딘가 폭

포가 숨고 이끼가 끼고 나비가 되지 않는 벌레도 안고 키

운다

   전생을 건너온 발이 여기 발아된 그 순간부터 산이 매복

하고 있었던 게다

   많기도 하지

   어디든 눈을 던지면 산이 산을 업고 또 기대고 있다

   어둠이 다락같은 저 붉은 산들을 누가 다 넘어 갔을까

      - 『문학과창작』 2002.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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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노트: 길을 막고 다가서는 게 어찌 지표면에 솟아오른 묏산뿐이랴. 우리의 일상 속에는 보이지 않는 산들이 너무나도 많이 출렁거린다. 산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고통을 들여다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야기되는 갈등, 꿈에 대한 좌절, 경제적 타격과 시간의 고갈, 예기치 않은 질병 등이 무수히 교차한다. 그 난관들은 개개인의 기쁨과 의지를 좀먹고 발걸음을 가로막으며 관점을 효란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태어남이라는 준령을 넘어온 정신들이다. 산을 닮은 심지 하나 키워간다면 어떤 산인들 넘지 못하랴.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우리의 발 아래 엎드린 게 바로 산이다. 산은 넘은 자의 것도, 넘을 자의 것도 아닌, ―넘는 자의 것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소유요, 빛이며, 정상이 아니겠는가.(이유식 편저『나의 작품, 나의 명구』에 수록/ 2005. 한누리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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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