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죽음의 시퀀스/ 김산

검지 정숙자 2017. 5. 24. 15:29

 

 

    죽음의 시퀀스

 

    김산

 

 

그는 죽었다. 희번덕거리다 죽었고 두리번거리다

죽었다. 털썩 주저앉아 죽었고 대롱대롱 매달려

죽었다. 그는 창에 찔려 죽었고 총에 맞아

죽었고 끈에 묶여 죽었고 혀를 끊고

죽었다. 그가 죽었으나 어떤 페이지에서도

부고를 알 수 없었다. 산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보험을 들고 연금을 받고 섹스를 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손목시계를 차고 죽은 다리로

죽은 팔을 흔들며 죽은 눈으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대부분의 죽음이 장렬하진 않았지만

비겁하지도 않았다. 몇몇이 서점가를 돌며

그의 죽음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은 무용했다. 그가 죽었지만

저녁은 푸르고 밤은 즐거웠다. 시간이 죽음 쪽으로

계속 휘청거리는 것을 산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알이 퀭한 고등어 위로 굵은 소금이 뿌려지는

포장마차 불빛은 여전히 아름답고 고소했다.

   -전문-

 

 

  해설>한 문장: 오늘날 어떤 시인들은 고백이나 호소와 같은 진술의 압박으로부터 더 자유롭다. 독특한 시적 주체들이 뿜는 다양한 감각의 지평에서 읽는 사람의 자리는 더 넓어진다. 시의 주체는 읽는 사람의 곁에 더 바싹 다가앉는다. 다정한 어조와 친밀한 감각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독자를 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함께 느끼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힌 독자에게 더 이상 시적 주체는 저만치 혼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해서 독자가 더 자유로워졌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읽는 사람은 시적 주체에게 더 강력하게 이끌리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그의 시선을 되짚거나 그의 자취를 따르는 것을 넘어 그에게 완전히 밀착하기까지 한다. 이런 경우에도 과연 읽는 사람의 마음의 자리는 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장은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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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치명』에서/ 2017. 5.15. <(주)함께하는그룹파란> 펴냄

  * 김산/ 1976년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키키』, 프로젝트 포크 밴드 '김산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