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나무
윤고방
물 한 방울 길어 올리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고 한 사발로 목
을 축이는 데 물경 일 년이 걸리는 사막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
가 살고 있습니다
온 누리 구석구석을 헤매어 달리는 뿌리는 나날이 밤새워 벋
어가 백 리를 기어가고 가지들은 수백 리 수액樹液과 길과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안개를 먹고 자라는 수천수만의 잎사귀들은 어쨌냐구요? 당
연히 밤낮으로 하늘을 향해 경건한 기도를 올렸지요 변덕스럽
고 극성맞은 이번 우기에도 소나기 한번 내리지 않았지만
멀리서 북회귀선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적도로 내려가는 천
둥에게 구름 몇 점이 손짓하고 있을 뿐, 흙먼지 머금은 안개만
이 뜨거운 햇살에 현기증을 앓고 있을 뿐, 줄기와 잎들은 서로
부등켜안고 허공을 향해 끊임없이 자맥질하고 있을 뿐입니다
구름이여 깊고 깊은 기압의 골짜기여 펄럭이는 당신의 희고
검은 옷자락 아래 소나기 그 신기루의 맨몸뚱이를 보여다오 그
대의 눈부신 비단 살결을 베고 누워 나무는 그제야 눈감으리
그러나
쓰러지지 말라 스러지지도 말라 세상을 온통 휘감는 노을빛
장삼자락이 천둥소리와 벼락을 데불고 나타날 다음 우기까지는
-전문-
해설>한 문장: 인용한 시편 「안개 나무」의 제재는 안개나무를 말하는 것인지, 안개의 나무를 말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고유명사이면 안개나무라고 해야 하는데 안개 나무라고 띄어쓰기를 했으니 후자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안개 나무는 여기에서 생명의 나무를 은유하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의 왕성함에 흠씬 빠져들게 하는 시. 생태학적인 상상력에 의한 일종의 생명시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시를 두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연상하였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인연에 따라 생기한다는 연기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원인 인因과 그 조건인 연緣이 끊임없이 한 관계성을 형성한다. 「국화 옆에서」의 관계성은 국화꽃으로 응집되었다. 이 국화꽃을 두고 '온생명'이라고 한다. 온생명을 만드는 낱생명들은 천둥 · 무서리 · 불면 등의 우주 요소들이다./ 마찬가지로 안개 나무라는 온생명에는 천둥 · 구름 · 안개 · 기압 · 소나기 · 신기루 · 벼락 등의 우주 요소인 낱생명이 있다. 안개 나무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관계성의 총화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이 시는 윤고방 시인의 이번 시집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는 가장 성취적인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송희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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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쓰나미의 빛』에서/ 2017. 5. 15. <문학의전당> 펴냄
* 윤고방/ 서울 출생, 198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낙타와 모래꽃』등, 한국미술대전 문인화부 초대 작가, <한국문학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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