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글루미 선데이 아이스크림/ 김상미

검지 정숙자 2017. 5. 16. 16:03

 

 

    글루미 선데이 아이스크림

 

    김상미

 

 

  너도 읽어보았니?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먹고사는 우리와는

  차원이 아주 다른 시집들

 

  그럴듯한 밑그림

  그럴듯한 환상

  그럴듯한 멜랑콜리아

  그럴듯한 충돌

  그럴듯한 기교,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살찐 애벌레들이 우글우글

  누구보다도 먼저 활짝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기 위해

  신이 주신 휴일, 일요일을 제 것처럼 만끽하며 즐기고 있는.

 

  썩은 이 비뚤어진 이 빠진 이 하나 없이

  만장일치로 손뼉 쳐 획득한 확실한 인생

  참으로 젊고 힘찬 욕망의 근육질로 꽉 균형 잡힌.

 

  매일매일 무엇을 사각사각 달콤하게 씹고 살았는지

  어느 페이지에도 우리처럼 울고 웃는 불운한 창문 하나

없이

  너무나도 세련되고 티 나게 아름다운 시집, 시집들.

 

  너도 읽어보았니?

  그들은 내일을 먹어.

  우리가 매일 꿈꾸는 그런 내일이 아니라 훨씬 밝고 비싼

내일.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최고급 위장과 최고급 심장을

줄줄이 단.

 

  분명 그들은 참 오래오래 살 거야.

  구멍난 값싼 호주머니 가득

  비 내리고 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일요일을 잔뜩 구겨넣고

  착취당한 죽은 고기만 먹고사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달라.

 

  일요일에도 거품 가득한 옐로카드에 주눅든 채

  그들의 달콤하고 잔인한 침샘에 죽어라 글루미 선데이 아

이스크림이나 되어 녹아내리다

  멍하니 타인이 되어가는 자신을 볼품없이 바라보는,

  바라보고만 있는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언제나 하늘이 있고 석양이 있고 구름이 있고 별이 있는

그런 시집들.

    -전문-

 

 

  해설>한 문장: 이번 시집을 읽으며 특이하게 떠오른 단상 하나. 번역체의 역동적인 문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러한 일에 종사하든가 혹은 외국어 문학을 전공했든가 하는 것과 전혀 무관한 김상미 시인의 시에서 만나는 독특한 문체. 어떤 때는 토막토막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그 모든 것을 유려하게 한데 뭉쳐 흘러가는 문체의 힘. 단독자의 독서가 빚어낸 길들여지지 않은 문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진하다. 또다른 하나는 아마 내면의 그물망을 섬세하게 통과시키지 않은 채 거친 발화 상태를 그대로 노출시키다가 다시 녹여내는 방법론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거친 발화 속의 진실, 자기 검열, 날카로운 눈빛, 그러나 그것들은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이어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가령 샤임 수틴, 에곤 실레, 피카소 등의 일생을 통해 김상미 시인은 숨가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우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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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에서/ 2017. 4. 28. <(주)문학동네> 펴냄

  *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등, 2003년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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