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유행가
진이정 (1959-1993, 34세)
죽음의 골짜기로 스미는
착한 물의 잠처럼
그대는 찾아왔네
그렇게
맞아들일 새 없었네
눈부처에 어린
그대 속눈썹, 내 영혼 빗질하네
들이마시네 난
기침 한 번 못한 채
먼지,
먼지 날리네
애욕의 고 미세한
알갱이들……
천근의 눈까풀, 그대여
내 무얼로
마다하리
어찌, 그댈 차마 떠올릴 수 있으랴
이제 죽지 않는 자,
그대만이 사랑 마다하리
오 사랑 없는 자여, 당신 홀로
영겁토록 죽지 않으리라
-전문-
▶ 헤비메탈 같은 진이정(발췌) _ 장석원
진이정의 "인생은 재즈라기보단 헤비메탈"(「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2」) 임이 분명하다. 삶을 헤비메탈로 바꾼 시인의 푸가를 듣는다. 그의 시가 빨아들인 죽음의 이미지를 열거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생생한 감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공포, 광기, 처형되어 세계를 구원하려는 자의 처연한 슬픔. 진이정은 우리에게 죽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는 왜 패배하였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이정의 검은 눈을 목격한다. 그가 창조한 "죽음의 골짜기로 스미는/ 착한 물의 잠" 속으로 들어가 치유를 경험한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의 순수를 되살린다. 그는 우리가 잊고자 애썼던 시의 본질을 발굴해 낸다. "그대는 찾아왔네/ 그렇게/ 맞아들일 새 없"이 당도했네. 진이정은 "애욕의 고 미세한/ 알갱이들"을 매만지고, 우리는 사랑의 미시에 눈을 감고, 시의 눈에 안대를 채우고, 쓰인 그것이 시인지 아닌지 따지지도 않고, 시 유통 기계에 시를 넣고, 팔리는 상품이 되든,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쓰레기에 불과하든, 열심히, 시를 생산한다. 나의 시는 결국, 쓰레기입니다. 당신의 시는 쓰레기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타락시킨 자, 나에게 진이정이 말한다. "이제/ 죽지 않는다,/ 그대만이 사랑 마다하리"라고. 불멸은 형벌이다. 사랑을 잃은 자에게는 형벌도 없는 죄뿐. 죽지 않을 것이라는 저주. 시를 배반한 자여, "당신 홀로/ 영겁토록 죽지 않으리라"는 진이정의 예언. 돌아본다. 타락한 시인들이 많다. 그들보다 더 사악한 나에게 오로지 죄 있을진저. 진이정이 나의 'the cure'이다. 진이정이 오늘의 시인들에게 벌을 선사한다. 죽은 진이정의 몸을 만진다. "난 내 욕정의 조국에만 충성할 거야. 난 내 본능의 비상소집에만 응소할 테야"(「사람, 노릇, 하기란, 너무나, 힘들어」)라고 선언하는 청춘의 벌건 헐떡거림 때문에 몸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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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2017-봄호 <issue>에서
* 장석원/ 2002년 《대한매일신문》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아나키스트』『리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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