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전광석화/ 김상미

검지 정숙자 2017. 5. 16. 15:41

 

 

    전광석화

 

    김상미

 

 

  어느 날 나는 '공부' 앞에 붙은 '열심히'란 부사를 떼어

내고

  학교 외의 삶을 가진 아이들에게로 갔다.

 

  그들은 '공부' 대신 '세상의 얼룩'을 갖고 놀았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책 대신 어른들에게서 밀수입해온

  '생각'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학점 대신 세상의 변화에 매달리는 것이

었다.

 

  나는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

  날마다 거울 앞에 서서 그들을 흉내내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마치 미친 오토바이를 몰고

  금방 어디론가로 떠나갈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았으며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습관처럼 남몰래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그들의 '얼룩'이 내 몸에도 묻어나길 기다렸다.

 

  손수 죄짓지 않고도 스스로 받는 벌!

  그 지독한 유희에서 깨어나기가 싫었다.

 

  나는 시민 K가 아니라

  시인 K 

 

  악착같이 '세상의 얼룩'을 빨아먹고 뱉어내고 또 빨아먹는

  시인 K

 

  눈물나게 외로운 전광석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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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에서/ 2017. 4. 28. <(주)문학동네> 펴냄

  *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잡히지 않는 나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