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그리고 이슬
서상만
오래전 그 돌은
불덩어리였지만,
긴 시간 공룡의 잔등을 타고
배고픈 멧돼지와 주작朱雀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아득한 골짜기 골짜기로
몸 식히며 내려왔다
속계를 내다보는
저 주상절리
때로는 인간의 기도에
해법을 주면서도
무애无涯까지 가르친다
돌에 돌 던지지 마라
그 돌 앞에 우리는
금세 지는 이슬일 뿐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을 말한다. 또한 용암의 냉각과 응고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며 생겨나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을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주상절리는 '벼랑'이나 '절벽'의 이미지를 통해 단호한 실존을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는 데 많이 원용되어왔다. 오래전 불덩어리였을 주상절리는, 오랜 시간 짐승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아득한 골짜기로 천천히 내려와 지금의 '벼랑'이자 '절벽'으로서의 견고한 모습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수심도 모른 채/ 푸른 바다 보고"(「청사포靑沙浦」) 살아온 가파른 표상으로 말이다. 이제는 몸이 식고 굳은 채로 속계를 내다보는 주상절리를 통해 시인은 "인간의 기도에/ 해법"을 암시받기도 하고, 인간 사유의 궁극적 지경일 "무애"까지 배워가기도 한다. '무애'란 끝이 없고 거리낌이 없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로 우리 인간은 "금세 지는 이슬일 뿐"이지 않은가? 여기서 '돌/이슬'이 가지는 '항구성/한시성'의 대조와 함께, 시인의 겸허한 존재론적 깨달음이 극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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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사춘思春』에서/ 2017. 5. 15. <책만드는집> 펴냄
* 서상만/ 경북 호미곶 구만리 출생, 1960~70년대 신문, 잡지에 독자 작품 발표, 198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사금파리』, 『노을 밥상』등, 동시집 『너, 정말 까불래?』『할아버지, 자꾸자꾸 져줄게요』등, 월간문학상 · 포항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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