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다시 읽는 『논어초論語抄』
조태현
요즘 들어 우편이나 택배를 통해 집으로 들어오는 책이나 잡지들이 상당히 줄었다. 그렇다고 해도 들어오는 것은 많고 누구에게 주거나 버리거나 하지를 못하고 있으니 서재로 쓰는 작은 방은 그야말로 포화상태라 혹 누가 와 볼까 부끄러울 뿐이다. 조부모님 제사 후 2월말까지는 강제 정리해 방바닥을 기어이 보겠다는 각오를 한다.
이것저것 우선 급한 대로 대충 정리를 하는 중에 눈에 띄는 새 책 하나를 집어 든다. 작년 가을 인천의 길영희선생기념사업회 심재갑 고문님께서 보내 주신 『한글과 영어로 읽는 논어論語』(심재갑 편저)라는 책이다. 불과 1백여 쪽이지만 하드커버로 장정된 책 표지에는 '길영희선생이 고른 논어명구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가 공자(孔子)라는 위인을 알게 된 것은 아마 초등학교 시절 국어책인가 도덕책인가에서 세계 4대 성인의 한 분으로 배웠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 대학 시절에는 특히 유교를 숭상하는 대학을 다닌 까닭에 교정에 있는 공자상을 보며 유학개론을 들었고, 교가를 통해서도 인의예지를 익혔었다. 그리고 십여 년 전 인천에서 근무할 때는 제물포고 설립자 겸 교장이셨던 교육철학자 길영희(吉瑛羲)선생을 기리는 독후감대회 대상을 받은 인연으로, 「길영희선생의 논어초論語抄」내용을 담은 휘호액자 등을 받은 인연도 있다.
공자는 지금부터 2천5백여 년 전인 중국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춘추(春秋)시대 말기에 활약한 교육철학자이자 사상가로 현실에 입각하면서도 이상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의 철학은 동아시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모아 엮은 책으로 동양윤리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유교의 경전이며, 사서(四書)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길영희 선생은 해방 직후부터 16년간 인천중과 제물포고의 교장직을 맡아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육성하신 한국 교육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시다. 그는 정년퇴임 후 멀리서 당신을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평생 애독하신 『논어』의 명구를 골라 작성한 『논어초』를 친히 휘호하여 나눠 주시며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권고하셨다고 한다. 일생을 애국애족으로 보내신 길 선생께서는 우리 국민이 논어를 열심히 읽는다면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교양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20편 5백 절이나 되는 방대한 논어의 내용 중 핵심이 되는 48개를 발췌하신 것이다. 이를테면 『논어초』는 현대 한국이 배출한 교육자요, 교육사상가이신 길 선생께서 오랫동안 교육하고 관찰한 끝에 뜻있는 사람들에게 긴히 필요하리라고 판단하여 선별, 권독하신 공자의 어록인 것이다.
어쩌다 가끔씩 읽어 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음미하는 구절은 그 48개 구절 중에서도 단연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절이다. 물론 맨 처음에 나오고 중 · 고교 시절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고 듣는 등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배움의 의미와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반성을 하도록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다. 『논어초』의 첫 번째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제때 수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 하지 아니하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또한 그 두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하나니, 爲人謨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증자가 말했다. "나는 매일 자신을 세 가지 일로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꾀함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더불어 서로 사귀는데 있어 신의를 다하였는가? 전수받은 것을 잘 익히지 않았는가?"
컴퓨터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한층 더 스마트 시대에서도,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문(文), 사(史), 철(哲)을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이 중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논어의 경우도 수천 년이 지난 21세기 오늘에 와서 이를 재해석하고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중국과 일본 들에서는 많은 기업들과 CEO가 논어의 효용성을 깨우치고 이를 기업 경영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도 논어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 줄 수 있는 철학이자 지혜의 고전이라는 생각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의 시기에 '인(仁)'을 덕목으로 내세우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공자의 철학과 사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라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는 정신적 가치철학으로서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전국적으로 촛불과 태극기의 찬반시위와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트럼프정부 출범과 함께 안보와 경제 등 국제적인 상황도 불확실성이 점차 고조되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공자가 제시하고 기대했던 바와 같이, 바른 정치로 국민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의 덕목과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고 여겨지지만, 나 역시 사리판단이 서서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이순(耳順)을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 그 사리판단을 하기 너무 어려우니…… 오호통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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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文學』 2017-5월호 <수필>에서
* 조태현/ 2005년 『문학저널』로 등단, 수필집『여백을 채우며』, 창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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