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퍼서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전문-
▶ '파꽃'처럼 밀어낸 생生의 물밀듯한 집중(발췌)_ 박성현
그런데 그 '그릇'이 심상치 않다. "국을 퍼서 밥상에 올릴 수도 없"을 만큼 뭔가가 달라진 것이다. 물론 백 년의 시간을 건너와 애초의 가치가 사뭇 달라진 게 그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아무래도 그릇은 그릇이어야 하는데, 시인은 뭔가에 사로잡힌 듯 그 너머에 골몰한다. 그는 한참을 살펴보다 그릇의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는 것이다. 멀어서 백년이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시인은 드문드문 이가 빠지고 뭉툭해진 '둘레'가 그릇의 아가미처럼 느껴진다. 호흡과 맥박도 가깝고 그것이 살아온 삶의 각각도 손에 닿을 듯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그릇은 나를 얻었다" 는 문장은, 따라서 대상을 투영하는 시인 고유의 감각적 '특이(特異) 면에서도 사유의 '밀도'다. 동시에 타인에게 덮친 저 불가해한 지난 4년을 털어내고 다시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시인이 그릇의 '둘레'에 내포된 의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시 쓰기의 욕망이 점점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둘레'에 입술을 대는 순간, 은밀하게 봉해진 그것의 내력이 한꺼번에 시인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둘레란 그릇의 '형상'을 만드는 자리이고, 또한 '깊이'와 '관능'을 생산해내는 세계와의 유일한 접촉/결합이다. '그릇'을 지탱하는 '강도(剛度)' 로' 꽉 차 있고, 바깥과 안을 구분하며 항상 '그릇'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시인도 마찬가지. 그는 '둘레'를 내면화 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시 쓰기가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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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7-5월호 <특집> 에서
* 안도현/ 경북 예천 출생, 1984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등, 산문집『백석 평전』『그런 일』등, 어른동화 『연어』『관계』등, 소월시문학상 · 백석문학상 등 수상
* 박성현/ 2009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서울교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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