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브리티시 룰렛/ 최백규

검지 정숙자 2017. 5. 4. 12:18

 

 

    브리티시 룰렛

 

    최백규

 

 

  우리는 쓰러진 한낮을 밟고 서 있는 부랑자

  공포와 망국을 이끄는 도둑과 살인자

  숲의 모든 로빈 훗들아

  새롭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들은

  너희가 해라 화살은 바람의 심장을 명중하지 못하니

  빛을 장전하리

 

  끝없는 벌판 위로 입김을 흩날리며

  더러운 귀족과 왕조의 목을 하나씩 찢어버리면

  쥐가 씹을 평화는 우아하다

 

  꿈에서 깨자 미래는 왔고

  왜 아침마다 허무와 폐허가 떠오르는 걸까

  찢어진 지폐가, 무너진 건물도, 폭발한 모니터마저 나를 경멸한다

  죽어가는 무덤 한가운데에서 매일 살려 달라 질질 짜며

 

  죽을 때까지 죽도록 살아야 한다

 

  이 행과 연은 현실이다

  노팅엄셔와 셔우드 숲은 존재하고 요크셔와 브란스테일, 록스레이라

불리던 스테닝턴이 시

  여름 한복판의 열망은 환각 아래에 접혀있고 머리 위로 그림자가 쏟

아진다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온종일

  죽고 싶다 외치며

 

  죽고 싶다, 떠드는 누군가의 현재는 분명히 살아있다

 

  신의 나의 피처링이다

  지껄인다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며 온종일

  운다 지고 싶지 않아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죽지 못해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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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7-5월호 <신예시인 초대석_신작시> 에서

  * 최백규/ 2014년『문학사상』으로 등단, '뿔'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