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한아_사후의 사후를 사는 냉담자의 멜랑콜리(발췌)/ 밝은 성 : 송승언

검지 정숙자 2017. 5. 2. 16:22

 

 

    밝은 성

 

    송승언

 

 

  안개 짙은 날에는 걷기만 했지

  죽는 날 듣게 될 음악을 생각하며

 

  웃었어 친구들도 웃었지 맞닿은 어깨들이

  빛나 보였어 먼 곳의 도시가 능히 그러듯이

 

  피어오르는 빛을 따라서

  안개는 몸을 지우며 길을 펼쳤다

 

  친구들, 안개 속에서 크고 환하여

  안개 걷히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없는 내 친구들

 

  사과와 크레용, 장미나 의자 따위

  저마다 대수롭지 않은 사물들을 손에 쥐고

  그것을 신앙이라 밝히길 두려워 않았던

 

  친구들이 울었어 어두운 도시로 걸었지

  지울 몸이 없어 도시로 가는 길도 없는

  흑암 속을 걷는 친구들

  그곳이 도시인 줄 모르면

 

  친구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친구들이었던 친구들

  신실했고, 저마다 아껴 듣는 음악이 있었던

  내 친구들

     -전문-

 

 

   ▶사후의 사후를 사는 냉담자의 멜랑콜리, 혹은 신성성의 재상상 : 송승언의 시(발췌) _ 정한아 

  이 '나'의 죽음에 대한 상상의 연습은 희화화    '신의 죽음'에 대한 상식을 터득하는 일    을 통과하면서 그 세부가 더 풍부해지고 수정된다. 19세기 서구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와 니체를 통과하면서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나 '망상', '원한'으로 간주하고 교회 제도에 대한 회의를 신 개념 자체의 폐기로 몰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우주가 빅뱅에서 탄생했으며 삶이라는 사건과 그 사건의 끝장만이 확실하다는 것, '죽음'은 단지 '나'의 전면적인 무화를 의미하고, '사랑'과 같은 낭만적인 이상은 '호르몬의 부기우기'(헨리 밀러)에 불과하다는 '과학적인 믿음'을 견지하도록 훈련된다. 그뿐인가. 죽음에 대한 상상은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유한자 의식과 영원에 대한 희구와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갈구라는 과정과 진지함을 잃고 '정교한 웃음을 짓는 탁상 위의 유리 해골'(「유리 해골」)과 같은 힙한 소재가 된다./ 죽음- '전능한 신'에 대한 유년의 관습적인 연상은 "사과와 크레용, 장미나 의자 따위/ 저마다 대수롭지 않은 사물들을 손에 쥐고/ 그것을 신앙이라 밝히길 두려워 않았던// 친구들"이나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친구들이었던 친구들/ 신실했고, 저마다 아껴 듣는 음악이 있었던/ 내 친구들"과 같은 시구에서 보듯이 이생과 사후를 엮고 사과와 크레용, 장미나 의자, 아껴 듣는 음악 같은 사소하고 친밀한 사물과 예술에의 애정을 신앙에 버금가는 것으로 연장하며, 함께 살아/ 죽어가는 유한자로서의 친구들을 이미 죽은 자의 시선에서 애도할 만큼 시간을 초월한 지속적인 연민으로 확장한다. '나'의 부재가 초래한 이 세계의 부재는 선취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이 된 나'는 여전히 그 흔적을 환지통처럼 유지한다. 「내 책상이 있던 교실」처럼 「밝은 성」에서도, 과거를 기술하는 현재의 목소리가 대과거 속으로 편입되고, '나'는 '나'와 '너'와 '우리'를, 삶과 죽음을, 이생과 사후를 겹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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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2017-봄호 <critic> 에서

  * 정한아/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어른스런 입맞춤』, '작란作亂'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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