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사라진 말들의 유해/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7. 4. 11. 23:44

 

 

    사라진 말들의 유해

 

     정숙자

 

 

  현장을 떠난 말들이 붓두껍 속에 고이는 걸까

 

  침묵을 건넌 말들이 거기 머물러 씨앗이 된다는 걸까

 

  어디선가 다친 말

  묻어버린 말

  쓰러진 말

  바람 소리 날려보지도 못한

  하늘, 곳곳에 뿌려진 타인의 말도 때로는 익명의 필묵에 맺혀

  가만가만 익어간다는 것일까

 

  살얼음을 끼고 창가에 당도한 아침

  입 속에서, 어깨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생존의 빙벽

 

  어떤 회로를 타고 창궐했는지

 

  구밀복검(口蜜腹劍), 참으로 당돌한 팔매질이다 

 

  말을 떠나서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자다'

  이런 말이 공공연한 주술이 된 지도 오래

 

  말없이도 말이 되던 말다운 말

  어떤 말에도 파묻히지 아니하던 실다운 말

 

  그리운 그리, 운 말들 사라지는데 슬픈 문장이 멀리서 온다

   

      

   * 이 시의 원작에서 자기복제 일부가 발견되었기에 부분적으로 개작을 가함.

    

    -----------------  

     

  사라진 말들의 유해 (원작)

 

 

  말이 사라지는데 문장이 걸린다

 

  현장을 떠난 말들이 붓두껍 속에 고이는 걸까

 

  침묵을 건넌 말들이 거기 머물러 씨앗이 된다는 걸까

     

  어디선가 다친 말

  묻어버린 말

  쓰러진 말

  바람 소리 날려보지도 못한,

  하늘 곳곳에 뿌려진 타인의 말고 때로는 익명의 필묵에 맺혀

  가만가만 익어간다는 것일까

 

  살얼음을 끼고 창가에 당도한 아침

  입 속에서, 어깨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생존의 빙벽

 

  어떤 회로를 타고 창궐했는지

 

  약육강식, 참 무서운 틀이다

 

  그런데도 '삶은 아름답다' 서로서로 에두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달

  은하(銀河)의 푸른 팔이야말로

  얼마나 오랜 긍정이며 불변의 위로인가

    -전문-

 

 <旣 발표작「문명의 탁자」와 내용/표현이 중복된 부분(7·8연, 수정일자 2017.4.12-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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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 발표 지면: 계간『들소리문학』2017-봄호 <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등, 산문집 『밝은음자리표』『행복음자리표』, 2008년 들소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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