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23
정숙자
일 초 모으기// 일 초를 모으면 2초가 된다. 일 초를 모으면 3초
도 되고, 그걸 계속 모으면 시간이 되기도 한다.
돈은 벌어야 생기지만, 도둑맞거나 잃어버리거나 지출해야만 줄
어들지만… 일 초는 건드리지 않아도 소멸된다.
까짓 거. 아무 데나 널린 일 초. 너도나도 백만장자다. 하지만 거
저 들어온 일 초는 가만 뇌두어도 정확히 일 초에 일 초씩 빠져 나
간다. 게다가 한 번 사라진 일 초는 귀신도 찾지 못한다. 담아둘 지
갑도, 맡아줄 은행도 없다.
나는 오늘도 일 초 모으기에 주력한다. 일 초를 아끼지 않으면 2
초, 3초, 평생일지라도 거덜이 나고야 만다. 일 초의 곳간이란 다름
아닌 정신이며 육신이다. 일 초 일 초가 다 거기 저장된다. 빗장을
열면 프랙털이 드러난다.
버스라면 쉽고 빠른 인사동. 그러나 나는 갈아타기를 감수하면서
까지 전철을 택한다. 버스에서 책을 펴면 메스껍고 울렁거리지만,
전철이라면 편히 몇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내재되는 몇 십 분의
총량이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아직 연령미달이다. 무료승차권이 없다. 혹 그런 관계로 지
하철을 애용하는 게 아닐까, 궁금증이 번질 수도 있겠기에 여기 밝혀
두고자 한다. 그런데 미안한 일이지만 가을이면 내게도 그 무임승
차권이 발급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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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학』2017-여름호/ 권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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