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꿈
정재영
사내는
하늘 끝자락으로 달려간 초원에서
죽음처럼 깊은 낮잠을 자며
물빛보다 맑고
보름달보다 큰 눈을 가진
여인의 꿈을 꾸었습니다.
노랑꽃 푸른 들 한가운데
하늘 호수를 받치고 있는
나뭇가지 둥지에서 내려와
여인의 머리카락을 흩어뜨리는
검은 새를 잡으려 말이 되어 달렸습니다.
절벽 사이 강물 흐르는 깊은 계곡 허공 위 무지개에 짓눌린 새는 말발
굽 소리에 잃어버린 노래를 찾으러 사라졌습니다.
말은 새보다 높이 날아 무지개 한 끝을 물고 활처럼 휘어 여인의 곁에
잡아 매주었습니다.
여인이 말갈기를 쓰담자 말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지나가던 구름이 엉겁결에 일곱 색 빗방울을 뿌렸습니다.
꽃들은 깨어나 노래하고 나비들도 모두 나와 춤을 추었습니다.
빗물에 씻겨 알몸 사내로 돌아온 말은 그 자리에 팔 벌린 한 그루 나
무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그늘에 앉아 나무 끝에 걸린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사내와 여인이 속삭였던 씨앗들이
이 동네 저 동네 홀씨로 날아가 자리 잡은
팔 벌린 정자나무에 걸린 편액 속 언어들은
초원으로 물길을 만들어 흘려주고
항아 나무에 숨었던 짐승들이 환한 불을 켜자
말 그림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기도를 합니다.
-----------------
*『현대시』2017-3월호 <신작특집> 에서
* 정재영/ 2005년『현대시』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슬 프로젝트- 21/ 정숙자 (0) | 2017.04.10 |
|---|---|
| 김언_한 손에는 언어를...(발췌)/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정재학 (0) | 2017.04.09 |
| 수레/ 김지헌 (0) | 2017.04.09 |
| 그래도/ 김지윤 (0) | 2017.04.09 |
| 안경을 벗으면/ 김지윤 (0) | 2017.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