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초원의 꿈/ 정재영

검지 정숙자 2017. 4. 9. 14:54

 

 

    초원의 꿈

 

    정재영

 

 

  사내는

  하늘 끝자락으로 달려간 초원에서

  죽음처럼 깊은 낮잠을 자며

  물빛보다 맑고

  보름달보다 큰 눈을 가진

  여인의 꿈을 꾸었습니다.

 

  노랑꽃 푸른 들 한가운데

  하늘 호수를 받치고 있는

  나뭇가지 둥지에서 내려와

  여인의 머리카락을 흩어뜨리는

  검은 새를 잡으려 말이 되어 달렸습니다.

 

  절벽 사이 강물 흐르는 깊은 계곡 허공 위 무지개에 짓눌린 새는 말발

굽 소리에 잃어버린 노래를 찾으러 사라졌습니다.

  말은 새보다 높이 날아 무지개 한 끝을 물고 활처럼 휘어 여인의 곁에

잡아 매주었습니다.

  여인이 말갈기를 쓰담자 말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지나가던 구름이 엉겁결에 일곱 색 빗방울을 뿌렸습니다.

  꽃들은 깨어나 노래하고 나비들도 모두 나와 춤을 추었습니다.

  빗물에 씻겨 알몸 사내로 돌아온 말은 그 자리에 팔 벌린 한 그루 나

무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그늘에 앉아 나무 끝에 걸린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사내와 여인이 속삭였던 씨앗들이

  이 동네 저 동네 홀씨로  날아가 자리 잡은

  팔 벌린 정자나무에 걸린 편액 속 언어들은

  초원으로 물길을 만들어 흘려주고

  항아 나무에 숨었던 짐승들이 환한 불을 켜자

  말 그림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기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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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7-3월호 <신작특집> 에서

   * 정재영/ 2005년『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