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의 실천
이성림
세상이 여러모로 험난하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지 않나,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나,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이 곳곳에 도시리고 있는 세상살이다.
아침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회사 가요." 하면서 멀쩡하게 다녀온다는 식구들이 때로는 얼굴이 긁힌 모습으로 돌아오는가 하면, 다시는 못 만날 길을 떠나 버려 가슴 미어지게 하는 일들도 목도하게 된다.
얼마 전 학교에서도 우리 학생 하나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줄 알고 얼굴을 디밀었더니 부딪혀서 이가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결코 가볍게 다친 일이 아닌 것이다. 아침에 나간 온전한 모습으로 저녁 때 돌아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임을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예기(禮記)』의 「곡례(曲禮)」상편에서는 '부위인자자 출필고 반필면(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이라고 하여,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행선지를 말씀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의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옛날 어린이들의 학습서인 『소학(小學)』에도 실려 부모에 대한 예의범절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교육되었다. 세상이 그리 험난해 보이지 않는 옛날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내린 것을 보면 반드시 익혀둬야 할 행동지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세상살이의 기본이 무엇인가. 인사성의 밝음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인간, 사람다운 사람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예의범절을 갖추는 것이 도리이다.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가정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가정에서 습득된 행동거지가 사회로 이어진다. 어쩌다 학생이나 조교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가만히 지켜보면 열에 여덟 아홉은 다녀온다든지, 잘 수행하고 왔다든지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것은 시키는 대로 했으니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평함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어른 혹은 직장 상사에게 출입을 알리는 것은 생활예절의 기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본의 유명한 에세이스트인 무고다 구니코의 글에 보면, 어려서 자기 집안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드시 다녀온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와서는 얼굴을 디밀고 인사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저녁 때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아이들 모두가 현관에 줄을 서서 "다녀오셨습니까?"라고 합창하듯이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일단 인사를 여쭌 후에 각자 자기들 방으로 쥐방울같이 흩어져 들어갔다는 묘사를 읽으며, 그 집안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다소곳한 어머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근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아이가 건넛방에 아직 있는 줄 알고 방문을 열었는데, 언제 나갔는지 빈방만 허탈하게 바라보며 힘없이 문을 닫으며 '말도 없이 가 버렸네.' 하면서 허전해 한다.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힘겹게 지쳐서 돌아오는 아버지, 가장을 환대하지 않아 '내다보지도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좋은 전통은 반드시 이어나가고 살려야만 한다. 『예기』와 『소학』에 실렸다는 것은 특별한 어려운 주문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인성교육의 출발점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문 원문의 분위기도 의미심장하다. 나갈 때 말로 고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돌아와서는 말로 고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면상을 반드시 보여 주라는 것이다. 필(必)이라는 글자에서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 항목임을 알게 한다. 글자의 뜻을 잘 새겨들어야만 한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 어쩌면 시험에 응시하러 나갔다 온 가족 등 볼일 보러 나간 일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그저 돌아와서 보여 주는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만했는지 무언가 잘 안 되었는지, 식구들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 어디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들어와서는 얼굴 좀 내밀자. 무에 그리 힘든가. 생활습관으로 익히면 된다. '나갈 때는 부모님께 반드시 출처(出處)를 알리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뵈어 안전(安全)함을 알려드린다'라는 뜻으로 몸에 익히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밖에 나갈 때 식구들에세 나간다는 뜻을 고하고, 들어와서는 집 안에 있는 가족에게 볼 일 잘 보고 돌아왔다는 의미로 얼굴 한 번 보이는 것, '출필고 반필면'을 어려서부터 실천하기 바란다.그러한 가정교육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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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文學』 2017-3월호 <수필> 에서
* 이성림/ 1990년『문예사조』로 등단, 저서『한국문학과 규훈연구』, 공저『혼자 피는 꽃』, 한국신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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