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마도, / 정온

검지 정숙자 2017. 4. 1. 11:56

 

 

    아마도,

 

    정온

 

 

  열여덟 키 큰 남자아이는

  절대 아무도 내 몸에 손댈 수 없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때 밀어드립니다' 목욕탕 앞에서 창피한 줄 모르고 도리질 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누가 그 몸에 손을 댑니다

  속옥까지 벗깁니다

  여드름 몇 오른 이마와 보드라운 귓속과 간지럼 타는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찬 알코올로 닦아냅니다

  바르르 떠는 실핏줄들 벌떡 일어나 "싫다고!" 소리치며 침상을 엎어야 하는데

  가만히 누워만 있네요

  손가락 하나면 금방 찢어질 한지에 맨몸을 싸는데

  두 주먹만 꼭 쥐고 있네요

  아마도,

  무서웠나 봅니다

  바다가 얼까요

  산도 들도 춥다고 흰 눈을 눈썹까지 덮고 누웠는데 또 눈이 옵니다

  얼면 흰 눈이 쌓일까요

  눈을 소복이 덮고 누워서 따뜻하다고 이젠 괜찮다고

  잊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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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경계』 2017-봄호 <신작시>에서

   * 정온/ 전북 김제 출생, 2008년『문학사상』으로 등단,『오, 작위 작위꽃』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