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책들의 장례식이라 하면 어떨까요?/ 김영산

검지 정숙자 2017. 4. 1. 11:36

 

 

    책들의 장례식이라 하면 어떨까요?

 

    김영산

 

 

  이제 그만 보낼 때가 되었습니까?
  지난 십여 년 종이관에서 죽어지냈으니

  문자들의 다비식을 치를 때가 되었습니까?*

  입에만 맴돈 둥그런 말들 쌓았습니다

  가슴으로 빠개 논 장작은 눕혔습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담긴 책들을 펼치고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에 미소하는 금빛 불상

  몇 장을 불비처럼 세워 모시고

  수백 수천 권 죽은 책들을 또 눕히고

  장작더미 허리는 염습하듯 종이로 둘둘 말아

  불을 댕깁니다, 벌건 불빛 속 등신불처럼

 

  몇은 앉고 몇은 돌고 돕니다 둥근 환한 불고리는

  연기가 빠져나가며 생겨납니까?

  두 손 모으고 이윽히 책들의 장례를

  지켜보는 이는 책을 낳은 솔 출판사 임우기 선생

 

  다 타버리기 전 꼭 한번은 불의 제단이 될 것입니다

  다 타지 않은 종이에 조각의 구름과 불 속의 반가사유상

  다 타버린 책들의 결이 보일 것입니다

  그 결 따라 잿더미 문자들이 빠져나갔습니까?

  고운 결은 왜 죽은 뒤에야 보입니까?

     -전문-

 

  * 시인 주용일은 두 권의 시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 시집 『문자들은 따뜻하다』에서 빌림.

 

 

    ----------------

  *『시와경계』 2017-봄호 <신작시>에서

  * 김영산/ 전남 나주 출생, 1990년『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하얀 별』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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