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말로의 책/ 안희연

검지 정숙자 2017. 3. 29. 12:57

 

 

    말로의 책

 

    안희연

 

 

  말로의 책에는 말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로의 나이와 직업, 식성이나 취미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해진 적 없는 보다 은밀한 부분들까지

 

  우리는 말로가

  다리 많은 벌레를 무서워한다거나

  한겨울에도 갑갑해서 양말을 신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볼 땐 귀의 모양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말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인물이다

  말로의 옛 연인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데려다 놓아도 그

가 안 보일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전부 다 알겠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는 그가 있어서

  말로의 책은 지겹지 않다

  말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언뜻언뜻 비껴날 때마다

  이야기는 보다 알록달록해진다 진심을 다해 그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책의 결말이 바뀌는 법은 없다

  말로는 종종 자신이

  누군가의 관상용 어항에 갇힌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모두가 이렇게 뻐끔거리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창밖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잠잠하던 저울추가 빠르게 흔들릴 때

 

  정확히 10분 뒤

  말로는 머리 위로 떨어진 벽돌을 맞고 죽는다

  말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바다를 향한 걸음을 성큼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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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2017-봄호 <신작시>에서

  * 신용목/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아무 날의 도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