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장상용_ 라임아리트 2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검지 정숙자 2017. 3. 18. 14:4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장상용

 

 

  '삶이 뭘까? 인간이 뭘까?' 되돌아 볼 때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이 시를 쓴 주인공 역시 자신의 시처럼 살다 갔기 때문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1825년 作-

 

 

  푸시킨(1799. 6~1837. 2)은 고골리,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도스또옙스키, 톨스토이 등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러시아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외증조부가 아프리카인이어서 금발의 러시아인과는 다른 검은 곱슬머리와 구레나룻을 지닌 그가 이 시를 쓴 시점은 1825년입니다.

  푸시킨은 젊은 시절부터 귀족 청년으로서 낭만주의 문학, 그리고 바이런에게 심취해 자유주의사상을 길러나갔고, 1819년부터 농노해방, 개혁을 추구한 진보적인 젊은 귀족들의 비밀결사체인 제까브리스트(12월 당원)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전제군주인 차르 체제의 러시아에서 아주 위험한 일이었지요.

  마침 1825년 12월 1일 자유주의적 개혁 성향의 알렉산드르 1세가 사망하고, 반동적인 니콜라이 1세가 즉위했습니다. 같은 달 14일 반동정치에 저항한 제까브리스트의 봉기가 터졌지만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제까브리스트 단원으로 의심받은 푸시킨도 유폐, 추방을 피할 수 없었지요.

  1823년부터 바이런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푸시킨은 향후 7년 간 많은 서정시를 썼는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제까브리스트의 봉기라는 음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탄생한 이 시기의 서정시 중 하나입니다. 이 시기의 서정시들은 대체로 삶의 의미, 인간의 행복에 대한 사색을 다루고 있으며, 슬픔의 모티브와 삶 간의 투쟁을 표현하지만 낙천적 귀결을 갖습니다. 푸시킨은 자기 시대의 삶이 고뇌와 슬픔으로 가득함을 알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낙천적 믿음으로 충만했습니다.

  제까브리스트의 봉기 이후 푸시킨은 당대 최고의 미녀에게 홀딱 반합니다. 그가 무도회에서 꽃송이처럼 활짝 피어나는 16세의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첫 만난 시점은 1828년. 당시 곤차로바(1812년 9월 출생)는 푸시킨과는 열세 살 차이었습니다. 푸시킨은 그 다음해 서둘러 곤차로바에게 첫 구혼을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푸시킨의 끈질긴 구혼이 결실을 맺어 1831년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푸시킨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요? 프랑스 장교 조르주 단테스가 사교계의 여왕이던 곤차로바에게 치근덕거리며 푸시킨을 괴롭게 했습니다. 당시 결투는 불법이었지만 결투로 명예를 지키는 것이 귀족들의 불문율이었습니다.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한 푸시킨은 1837년 2월 결투에서 단테스의 총탄을 맞고 이틀 동안 사경을 헤맨 끝에 숨집니다.

  삶은 시의 한 구절처럼 푸시킨을 속였습니다. 그가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와 낭만도 반동주의에 가로막혔고,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사랑도 오래 가지 못하고 도리어 그의 죽음을 재촉했습니다. 푸시킨 역시 삶을 이길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죠.

 

 

  진실, 사랑, 믿음, 희망. 그것들을 찾는 것이

    시집의 책갈피를 접어보고 뒤적이는 기쁨.  

 

 

  푸시킨의 시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건 그 시가 가진 진실과 위안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는 구절처럼 푸시킨의 이상도 시간이 흐른 후 이루어졌습니다. 진실, 사랑, 믿음, 희망. 그것들을 찾는 것이 시집의 책갈피를 접어보고 뒤적이는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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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엠포엠』2017-봄호 / 장상용의 라임라이트 21

    * 장상용/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 외국어대 대학원 러시아 문학 전공, 일간스포츠 만화와 문화 전문기자, EBS 스토  리 코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스토리텔링 온라인 강사,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피스티벌) 큐레이터 등 역임, 저서『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쓰기』,『프로들의 상상력 노트』,『내가 펜이고 펜이 곧 나다』,『CEO, 만화에서 경영을 배우다』,『사랑책』등, 現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