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박정선
바위에 던져버렸다
산산이 부서진 추억이 돌 틈 사이로 흘러내린다 새끼손가락이 아리
다 어둠 속으로 떠난 자리가 텅 비어만 간다 돌아선 발걸음 흔들린다
의사 처방은 언제나 알약이 전부였다 주사를 맞는 날엔 꿈속에서 동
공이 마구 흔들렸고 나뭇잎 구르는 소리만 들렸다 몸을 지탱하는 하
얀 벽과 천장은 소독 냄새로 가득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득하다
너는 언제나 빈손만 내밀 뿐 아무 말이 없다
종일 그림자 주변을 맴돌다 주삿바늘에 찔린 너를 본다 차가운 눈빛
속으로 약물이 흘러넘친다 처리되지 않은 찌꺼기가 독사처럼 꿈틀거
린다
엄마,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요
저기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가 울고 있어요
-전문-
▶ 흔적 지우기와 세우기를 통한 새로운 자아의 탄생(발췌) _ 송기한
이 작품을 끌어가는 핵심 소재는 기억이다. 기억이란 현재의 나를 인도하고 규정해주는 절대적인 기제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러한 기억의 작용에 대해 과감하게 포기한다. 시인은 그것을 '바위에 던지고', 그 결과 "산산이 부서진 추억이 돌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것의 파편 현상을 용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시인은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되지만 그러나 주변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의사'로 상징된 이성의 잣대, 존재를 규정하려는 시도들은 계속 결론 없이 시도되어야 하는 도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매우 처절하게 진행된다. 시인은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속성인 모성적인 것에 기대어 보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 도정은 "엄마,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요"라는 처절한 절규로 반향되어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겨진 것은 "저기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가" 된 자아를 발견할 뿐이다./ '어린 아이'가 미정형의 상태라고 한다면, 시인의 그러한 노력은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이해된다. 소멸을 통해서 자아를 이해하려 들지만, 시인은 자아에 대해 어떤 명확한 규정 자체를 내리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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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티카』2017-상반기호 <시에티카 시인 / 작품론>에서
* 박정선/ 충남 금산 출생, 2010년 『호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라싸로 가는 풍경소리』
* 송기한/ 충남 논산 출생,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저서『현대시의 정신과 미학』 『육당 최남선 문학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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