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당신의 거처/ 조용미

검지 정숙자 2017. 1. 18. 03:09

 

 

    당신의 거처

 

    조용미

 

 

  처음의 꽃이, 지고 있다

 

  저 커다란 흰 꽃은 오래도록 피어 천 년 후엔 푸른 꽃이 되고 다시

천 년 후엔 붉은 꽃이 된다 하니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늦은 가을이 계속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는 깊이 감추어 둔 쇄쇄

록(瑣瑣錄)에 생의 모든 사소함을 기록하며

  기나긴 계절의 매서움을 이겨 내었다

 

  이 모든 것이 반복되어도 생은 아름답구나.

 

  여러 생이 모여 높고 낮고 넓고 깊은 하나의 音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새는 천 년을 살다 죽을 때가 되면 악곡을 연주하여 열락의 춤을 추

다 불 속으로 뛰어든다 그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다시 생을 받

게 된다

 

  그 새는 다시 무엇이 되지 않는 불사조이니 불사는 아름다움과 멀어

지는 불행이므로

  봄은 계속되지 않았다

 

  마음이 아득하면 머무는 곳도 절로 외지게 되니* 당신의 거처 또한

묘연하여 물소리 깊고 구름이 높았다

 

  다시, 꽃이 떠있는 이른 봄이다

    -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 민음사, 2016

 

     * 도연명의 시 」의 心遠地自偏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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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16-겨울호 <시집 속의 시 한 편>에서

   * 조용미/ 1990『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기억의 행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