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달고기와 눈치/ 박서영

검지 정숙자 2016. 12. 2. 13:42

 

 

    달고기와 눈치

 

      박서영

 

 

  물속에 달이 뜬다

  깊이라는 말의 안쪽에는

  잿빛 몸에 노란 테를 두른

  검은 반점무늬의 달고기가 살고 있다

 

  어쩌다가 물고기가 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영혼이 있는 동안에는 황금빛 달무리를

  머리에 쓰고 떠돌아도 좋으련만

 

  우리의 얼굴에는

  눈치라는 물고기가 모여 사는 웅덩이가 있어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 왔을 때

  어디선가 들렸다, 다시 시작하라는 전언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 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밤 물결들이 은은하고 생생하게

  한 사람과의 추억을 기록하고 있을 때

  선원들은 내 심장을 슬쩍 들여다보다가

  막대기로 휘젓기도 하였지, 그때마다

  눈치가 얼마나 커버렸는지

  저기 봐, 눈치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어!

 

  슬픔이란 최선을 다해 증발하고

  최선을 다해 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달고기는 고요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눈치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런 식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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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2016-겨울호 <시에 시>에서

  * 박서영/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좋은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