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굴절/ 이세영

검지 정숙자 2016. 11. 23. 22:09

 

 

    굴절

 

    이세영

 

 

  베란다에 햇살이 쨍쨍하다

  누워 멀거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몸을 빠져나온 시간을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는다

 

  물의 양과 물살의 세기에는 관심이 없고

  세제 두 숟가락 풀어 넣는 버릇은 여전하다

  버튼만 누르면 성실히 돌아가는 세탁기 통 속에

  옷가지들이 서로 얽히고설킨다

  풀어졌다가 휘감았다가 쥐어짜기를 몇 번 거쳐

  핑그르르 힘을 빼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끝났다는 멜로디는 표정이 없는데

  난데없이 속옷에 희뿌연 물이 들어 있다

  빨랫감에 함께 쓸려 들어간 게 뭘까

  때가 잘 가시지 않은 양말을 뒤집어보다가

 

  문득 세상을 빙 돌다 쪼그라진 나는

  어떤 색깔에 물들었을까

  탈수 후의 내 몸이 궁금해진다

  밑도 끝도 없는 한숨 한 줌을 세제에 섞은

  기억이 빨랫줄에 오래 걸린다

     -전문-

 

   ※ 발표 시 제목 '빨래'를 '굴절'로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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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16-겨울호 <2016년 제3회 전국 계간 문예지 우수작품상 『문예연구』수상자, 신작시>에서

  * 이세영/ 1962년 전북 정읍 출생, 2015년 『문예연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