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굴러가는 것들은 둥글다/ 김희숙

검지 정숙자 2016. 11. 24. 13:18

 

 

    굴러가는 것들은 둥글다

 

     김희숙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왔다 생각하면

  온몸에 생채기투성이다

  굴러가는 것들의 길은 둥글다,

  계절이 그렇고 씨앗들이 그렇고

  사람과 사람이 그렇다

 

  굴러가는 바퀴는 늘 제자리

  좁은 원으로 가장 큰 원을 돌 수 있다

  이미 뱃속에서 공전과 자전을 다 배웠다

  그래서 굴러가는 것쯤은

  잠을 자면서도 할 수 있고

  가만히 앉아서도 할 수 있다

 

  둥근 꽃들도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무늬들도 바퀴를 따라 돌고 웃음소리도

  고함도 굴러가지만 각자

  회전수가 다를 뿐이다

  노모는 가끔 어지럽다고 주저앉고

  돌 만큼 돌고 구를 만큼 굴렀으니깐

  가끔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다고

  0에서 굴러 다시 0으로 도달하는

  숫자들의 세계에 편승한 이상 굴러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왼쪽으로 구르고 싶다는

  그래서 시계바늘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바늘과 만나는 곳마다

  새로운 0이 있을 것이고 바늘 끝으로

  그 시간들 터트리면서 굴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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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6-겨울호 <신작시>에서

  * 김희숙/ 2011년『시와표현』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