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정숙자_공간의 위로/ 노동절 : 김광규

검지 정숙자 2016. 11. 22. 15:03

 

 

<시사사 리바이벌 - 다시 읽어보는 오늘의 명시집!!!>   

 

    노동절

 

    김광규

 

 

  오늘은 주차장이 텅 비었다

  관리인도 나오지 않았다

  오일 자국으로 얼룩진 광장에

  온종일 햇볕이 내리쪼이고

  가끔 비둘기가 모이를 찾고

  바람이 지나간다

  일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널려진 물건들 하나도 없이

  하늘 아래 비어 있는 땅

  부당한 온갖 점거를 벗어나

  잠시 제자리를 찾아

  쉬고 있는 이 빈터를

  오늘은 주차장이라고 부르지 말자

    -전문-

 

 

   공간의 위로_ 정숙자(시인)

  공간은 또 다른 의미의 공기다. 어떤 이에게는 여백이나 여유의 표상, 어떤 이에게는 절대필요의 은신처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역량, 혹은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는 배분의 질서가 우리네 삶을 지치게도 밝게도 한다. 역사가 양각해놓은 전쟁의 이면에도 공간 확보라는 눈금자가 관여했을 것이다.

  구획되어진 공간의 그늘에는 인류의 피땀이 배어 있다. 삼라만상의 존재는 공간으로부터 비롯된다.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물의 ‘존재함’이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나아가 공간이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까닭은 거기 생명이 자리하기 때문이리라. 무량수의 조각으로 나위어진 공간.

  메이데이(May Day) 혹은 워커스 데이(Workers’ Day)라고도 일컫는 노동절(근로자의 날, 이전 명칭)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다지고 사기와 권익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5월 1일을 정하여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 시에 나타난 화자의 안목은 미시적 온정에 접근한다.

  “오늘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관리인도 나오지 않았다”라는 점으로 보아 이 주차장은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이 아니라 옥외임이 분명하다. “온종일 햇볕이 내리쪼이고/ 가끔 비둘기가 모이를 찾고/ 바람이 지나간다”고 하니 말이다. 성찰과 휴식의 시간이 눈부실 정도로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대개 노동절이라 하면 사람 위주로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김광규 시인은 “잠시 제자리를 찾아/ 쉬고 있는 이 빈터를/ 오늘은 주차장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한다. 여기서 “오늘은”은 ‘오늘만이라도’라고 읽어야 한다. 밟히거나 긁히고 얼룩지는 그 바닥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쓰다듬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공간은 공기뿐 아니라 물의 성품과도 닿아 있다.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조건이며, 거기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명칭과 기능과 모양까지가 달라진다. 인간이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어떤 공간이든 본래의 모습 그대로 영롱했을 터. 문명이란 자연 앞에 한갓 상처일 따름이었음.

  한 사람의 인정이, 한 편의 시가 이렇듯 겸허히 상처 입은 공간에 사죄를 전달할 수 있다니! 찌든 공기를 위로할 수 있다니! 이것이 또한 인간이 되살릴 수 있는 인성이 아니겠는가. “정신의 규정이 지각 자체를 변화시킨다."(메를로 퐁티『지각의 현상학』82쪽)고 한다. 내려서는 지성이 맑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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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16. 11-12월호(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