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린넨 시절/ 서윤후

검지 정숙자 2016. 11. 9. 02:02

 

 

    린넨 시절

 

     서윤후

 

 

  의자를 빼앗기면 테이블 떠날 사람이 정해진다. 서 있는 건 누구나

하고 있었으므로 앉은 자만이 주사위를 던진다. 윤곽 없이 테두리를 알

게 된다. 너와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미문을 이마에 얹으면 꿈은 글귀가 된다. 읽으면 사라지는 마법에 걸

린 창백한 거울은 제 몸에 비치는 걸 읽지 않는다. 난해한 얼굴은 그렇

게 태어난다. 나는 네가 보고 싶지 않다.

 

  스며들 만큼 벌어져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 식빵과 잼 사이엔

독을 키운 벌이 날아든다. 독을 놓기에도 아까운 사람이 집에 살고 있었

다. 주인인 척 행세하는 게으름이 흐르고

 

  아낀 말들이 겨울로 유배를 간다. 침묵을 부수던 망치는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을 때 아름답다. 무기가 주인을 잃으면 흉기가 되는 것처럼.

너는 나를 두고 간다. 나도 너를 두고 갔는데 

 

  오래된 관광지를 떠나는 기분으로 노인의 무릎을 본다. 보수가 되지

않은 마음만이 물을 흘린다. 누구 없어요? 묻는 틈 사이로 너무 많은 사

람이 고여 있고 선풍기는 반복을 반복한다.

 

  누가 나서야 할 지 모를 때 의자는 빼앗긴다. 어떤 혼방으로 엮어 헐

렁하고 느슨하게 버텨내고 있는 걸까. 그렇게 견딘 계절엔 속수무책의

구멍들로 가득해 그게 시원한 줄 알고

 

  너를 알게 된 함정을 나는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땀을 흘릴

때 가여움에 속아 너를 용서한 적이 있다. 날카롭게 숨 쉬는 나를 쥐고

너는 숲으로 간다. 헐떡일수록 질겨지는 서로를 갈아입고서.

   -전문, 『시와경계』2016_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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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6-11월호 <시인이 추천한 근작 발표시/ 윤의섭 추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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