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천강대임(天降大任)/ 박두원

검지 정숙자 2016. 9. 23. 02:01

 

 

    천강대임(天降大任)

 

    박두원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새벽에 일어나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를 간단히 마치고 서둘러 고향인 안성으로 갔다. 친척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차례를 지내고 조상님들 납골당이 있는 천안으로 가서, 가족들의 건강과 한 해의 안녕을 간단히 빌고 교통이 복잡해지기 전에 일찍 올라왔다. 오후 늦게 혼잡할 교통을 고려해 서둘러 온 것도 있지만, 전날 저녁 SBS-TV, k-pop5에서 제일 마지막에 방영된 이수정 양의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서였고,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해서였다.

 

  2015년, 작년 이맘때도 어린 참가자들의 음악에 대한 열심과 신선함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는데, 지난해 k-pop star4에서 우승한 미국 뉴저지주 출신의 케이티 김은, 가난한 이민 가정의 딸로 부모님의 고생하는 모습에 일찍 철들고, 눈물겨운 여러 사연과 슬픔이 가슴에 맺힌 출연자였다. 그녀는 TOP 10에 우여곡절 끝에 턱걸이로 마지막에 호명되었으나,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여 최종적으로 우승해 상금 3억 원과 부상으로 승용차를 받은 바 있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 슬픔이 짙게 묻어나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이번 k-pop star5에서 유망주로 꼽히며 선두권으로 달리고 있는 이수정 양도 부모가 미국에 가서 살았으나 이혼을 하고 이 양은 어머니와 미국에 살며, 아버지는 현재 한국에 와서 사는데 아버지를 만나러 와 k-pop star5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22살이지만 첫사랑과의 아픈 헤어짐이 있어서인지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색다른 감정의 몰입과 울림이 있다. 현재(2016.2.10.) 지난 3-4회의 방송에서 심사위원 세 분에게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렁이게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노래 장르 중 하나인 판소리도 '민족의 집단적 슬픔'이 음악으로 승화된 경우인데 10여 년 전에 크게 히트한 영화 '서편제'에서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것이라 훈육하고,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제소리가 나오는 법이라며, 득음시키기 위해 딸의 눈에 '청강수'를 부어 눈을 멀게 해 장님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감동을 전달해 카타르시스나 힐링을 유발케 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혹독한 시련이나 슬픔 등이 내재된 기억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렇듯 우리의 옛 노래인 판소리에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예술 중, 특히 음악에 있어서 시련과 깊은 슬픔이 그의 영혼을 단련시키고 성장시키며, 그의 업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수없이 보고 경험하게 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역사상의 작곡자들의 예를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된 사랑의 실패와 요절(39세 사망)로 안타까움을 준 피아노의 시인 '쇼팽', 1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대신해 두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그리고 병으로 귀머거리가 되었던 악성(樂聖) '베토벤', 가난과 병마(매독)와 불행 속에서 독신으로 살며 650여 편의 아름다운 선율의 주옥 같은 곡을 작곡해낸 가곡의 왕 '슈베르트' 등에게서도 발견되듯이 이는 마찬가지로 작용이 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모진 시련과 슬픔은 사람의 감성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역할을 함에 틀림이 없다.    하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그에게 임무를 맡길 때에는 반드시 큰 역경과 시련을 먼저 주어 시험을 한다는 천강대임(天降大任)이라는 맹자의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어떤 큰 시련, 어려움 또는 궁핍이 닥쳐 있다면, 역으로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종의 '훈련의 과정'이라고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더 큰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큰 사람은 의례히 '큰 시련과 남다른 역경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

 

     ---------------

  *『가온문학』 2016-가을<신인상 당선작, 수필> 부문에서

  * 박두원/ 1955년 경기 안성 출생, 홍익대 응용마술학과 졸업,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