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점용_풍경과 상처/ 민지의 꽃 : 정희성

검지 정숙자 2016. 10. 2. 13:32

 

 

문예바다』2016-가을호 <화보/ 풍경과 상처 12>_ 김점용

 

 

    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전문-

 

 

  "질경이 나생개 토끼풀 억새"는 '꽃'일까요, '잡초'일까요? 이름이 있으니 잡초는 아니지만 산과 들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그냥 '풀'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이름 붙이기(命名)인데, 그 흔한 것들을 모아서 '잡초'라고 부르는 사람과 '꽃'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인식의 스케일 자체가 다르겠지요. "꽃이야"라는 민지의 대답에 그냥 풀이라거나 잡초라고 말하려던 우리들의 입이 다물어지는 건 민지의 스케일이 우리의 스케일을 압도하기 때문이지요. 천지와 귀신까지 감동시키는 민지의 스케일은 곧 이것저것 분별하지 않고 우주의 그릇에 다 담을 줄 아는 시인의 스케일일 테고요. (김점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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