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미신
이용헌
단물이 빠져버린 사과가 놓여 있다
그는 마치 싱싱한 사과인 것처럼 사과를 그린다
화폭에 가득한 사과 냄새
알고 보면 그것은 가득한 것이 아니라
가득 떠 있을 뿐, 어디에도 사과는 없다
사과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 사과다
아니다
사과는 쟁반 위에 올려 있을 때 사과다
아니다
사과는 내 손아귀에 쏘옥 들어와
한입에 아삭, 깨물었을 때 사과다
그러나 이것은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의 이야기
어떤 나라에선 평생토록 사과 맛을 모르고 죽은 자도 있다
사과를 모르는 자에게 사과의 빛깔은 어둠이다
그러므로 이것도 사과의 존재를 아는 사람의 이야기
과육이 상실된 사과를 그리는 그에게
하얀 이빨을 선물한다
밤새워 그리는 그것이 사실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한갓 사과에 집착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환영도 내면의 일부라고
본디부터 내면은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웃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사과를 그려 본 사람의 이야기
어떤 나라 풍습에는 신화 속의 사과를 훔쳐 먹고도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과를 먹었다고 믿는 족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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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2016. 7-8월호 <신작특집>에서
* 이용헌/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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