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실향/ 김년균

검지 정숙자 2016. 9. 30. 21:09

 

 

    실향

 

    김년균

 

 

  느닷없이 찾아온 병에 드러눕다가

  스스로 알아서 건강을 다스려 본다고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 찾아 내려왔는데

  집 앞 외진 길목까지 CCTV를 설치하고

  온종일 감시하고 있는 걸 보면

  사람 못 믿기는 어디나 마찬가진가 보다

 

  엊그제는 큰아들 집에서 빨랫감으로

  철 지난 이불 보따리를 싣고 와서

  깜빡 잊고 차 속에 놓고 내렸다가

  캄캄한 밤중에야 그 생각이 떠올라

  황급히 되돌아가서 꺼내온 적 있는데

  그때의 내 모습도 그 괴물에 찍혔을까?

  아무 죄도 없이 범죄자로 의심받을까 싶어

  마음이 졸이고 심장이 굳어지기도 한다

 

  문명이 너무 발달한 탓이리라.

  사람 또한 말짱 헛길만 걷고 있으니

  누굴 믿고 누울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괴물이 시시덕거리며 밤낮없이 돌고 돌며

  나와 이웃을 감시해도 탓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젠 맘 놓고 살 곳이 어디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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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소리문학』2016-가을호 <시>에서

  * 김년균/ 1972년 이동주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장마』『사랑을 말하다』등 다수. 한국현대시인상, 들소리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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