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릇/ 김기화

검지 정숙자 2016. 9. 27. 20:40

 

 

     그룻

 

    김기화

 

 

  나는 보석보다 좋은 그릇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고을마다 소문 놓고 찾아 나섰다가 광주 땅에서 때깔 곱고 낯꽃 좋은 그

릇 하나 운 좋게 눈에 띄어 첫눈에 반했다.

 

  이 넓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그릇, 한순간 부주의로 깨지거

나 손 타지 않도록 늘 걱정하면서 글썽이는 눈물도 닦아주면서 보듬은 세

월 어언 오십 년이나 되어간다.

 

  여러 십 년을 쓰다 보니 그토록 곱던 빛깔도 희뿌옇게 바래고 여기저기

불거진 듯 틀어지고 틀어진 듯 패인 자국도 선연하다.

  인제는 한 삼동쯤 집을 비워도 바람이나 손 탈 염려도 없는데다가 내 표

정만으로도 이내 내 마음을 척척 읽어내고 있어 곁에만 있어도 그냥 편하

고 좋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살얼음처럼 금가는 소리가 나더니 지금은 사나

흘 들이로 이곳 저곳 제생병원을 찾아다니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두 곳 터거리 빠지는 일이야 애석하여도 그러려니 하겠지마는 만

에 하나 땜질마저 할 수 없이 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말 없는 사랑을 말없이 사랑할 줄밖에 사랑을 모르는 나

  한눈팔지 않는 가을 풀꽃처럼 날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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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16-가을호 <신작시>에서

  * 김기화/ 2004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산 너머 달빛』『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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