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지렁이
조춘희
빙판 위 겨울 지렁이 한 마리
멀쩡하게 생긴 아까운 여자가
자살했다는 속보 같은 일
차디찬 얼음 위
죽으려고 작심하지 않고서야
어이 그 길을 나섰을까
한껏 몸을 오므렸다 펴도
한 뼘 길이도 벅차다
꾸물꾸물 기어가다 느닷없이
격렬하게 춤을 춘다
빙판 위에
온몸으로 쓰는 마지막 유언
홀로 죽음과 맞서는 지렁이
사방을 둘러봐도
잡을만한 지푸라기조차 없다
쓰다 만 끊어진 문장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시집『꿈꾸는 콩나물』에서/ 2010.11.15 <다시올> 펴냄
*조춘희/ 충북 충주 출생, 2005년『문예운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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