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춤추는 지렁이/ 조춘희

검지 정숙자 2011. 1. 29. 17:08

 

  춤추는 지렁이


   조춘희



  빙판 위 겨울 지렁이 한 마리


  멀쩡하게 생긴 아까운 여자가

  자살했다는 속보 같은 일

  차디찬 얼음 위

  죽으려고 작심하지 않고서야

  어이 그 길을 나섰을까


  한껏 몸을 오므렸다 펴도

  한 뼘 길이도 벅차다


  꾸물꾸물 기어가다 느닷없이

  격렬하게 춤을 춘다


  빙판 위에

  온몸으로 쓰는 마지막 유언


  홀로 죽음과 맞서는 지렁이


  사방을 둘러봐도

  잡을만한 지푸라기조차 없다


  쓰다 만 끊어진 문장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시집『꿈꾸는 콩나물』에서/ 2010.11.15 <다시올> 펴냄

  *조춘희/ 충북 충주 출생, 2005년『문예운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