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검지 정숙자 2011. 1. 29. 16:25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영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롱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시집『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 2011.1.20 (주)문학동네 발행

  *허수경/ 경남 진주 출생,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