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밀려오는 바람내
맑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다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
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나는 중얼거
리네
당신,
우린 너무 젊은 연인이었어
우리는 너무 어린 죽음이었어
*시집『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 2011.1.20 (주)문학동네 발행
*허수경/ 경남 진주 출생,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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