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맨발의 색/ 정윤천

검지 정숙자 2011. 2. 21. 02:52

   맨발의 색


    정윤천



  몸이 태어날 때 맨 나중이던 것

  맨발


  그러니 당신의 맨발을 마주쳤다는 것은

  당신의 맨 나중까지를 본 것으로 쳐도 말이 되겠는지요


  나는 지금 당신의 맨발의 색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크레파스에도 적혀 있었던, 흰색은

  ‘맨발의 색’으로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흰색은, 가장 일찍 태어난 색일지도 몰라서

  그런 식으로 따지면 맨발의 색은 검정이 되어야 하는지도

  그러는 동안 나에게 맨발의 색은 모순의 색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나중에 태어난, 가장 처음인 빛깔로

  나는 지금 그 맨발의 색 하나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쳐보아도 당신의 맨발의 색으로는

  그 어떤 풍경화도 비구상화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한순간이 깜빡 제 숨결을 놓칠 때처럼 스쳤던

  가장 나중에 태어난 맨 처음의 빛깔로



  * 시화집『십만 년의 사랑』에서/ 문학동네 2011.1.15발행

  * 정윤천/ 전남 화순 출생,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와

   1991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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