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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을 걸어온 큰 작가 신봉승/ 마지막 인터뷰

검지 정숙자 2016. 6. 2. 16:51

 

 

『문학나무』2016-여름호 / 마지막 인터뷰

 

 

  역사 속을 걸어온 큰 작가

 신봉승

 

  일시_ 2015년 1월 19일

  장소_ 한국역사문학연구소

 

  드라마 작가 신봉승 선생이 지난 4월 19일 타계했다. 본지는 지난해 초 한 문학잡지에서 진행하고 발간하지 못한 신 작가 인터뷰 원고를 입수해 게재한다. 짧은 인터뷰이지만 신 작가가 마지막으로 행한 공식 활동이란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편집자 주

 

 

  ■ 일문일답

  근황을 말하다

 

  출생과 성장 : 1933년 강릉에서 출생. 소작인 몇을 거느린 중농 집 장손. 가정을 떠나 산 아버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신 어머니 사이에서 모정은 그득히 받았으나 외로움은 깊게 자람. 할아버지 무릎에서 천자문을 뗌.

 

  스승 : 고교 때 최인희, 황금찬 시인, 대학 때 조병화 시인. 경희대 국문과 시절 주요섭, 황순원 작가. 문학과 인간을 동시에 배우며 내면을 채움.

 

  "황순원 선생은 수업을 다 안 채우고 끝내셨어요. 그럼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게 아쉬우니까 교문 앞까지 따라가면 돌아보시면서 "왜, 한 잔 하고 싶어서?" 이러셨죠. 함께 학교 앞 대폿집에서 오래도록 문학 이야기를 나눴어요.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낭만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선생님께서 안 계시니까요. 그것이 우리 문학을 좁고 깊이가 없게 만드는, 어찌 보면 나쁜 조건이 되고 있어요. 문학적으로 성장하려면 훌륭한 스승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중요해요."

 

  등단 : 유치환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표. 대학 졸업 때 국방부에 현상 응모한 시나리오 「두고 온 산하」가 당선, 상금 300만 환으로 대단히 호사를 부림. 영화계로 진출은 했으나 당장은 일이 없어 강릉에서 교편을 잡음. 강릉 라디오 방송을 거쳐 국립극장 영화과에서 시나리오 심의 업무를 담당.

 

  "한국 영화가 1년에 150편 가량 만들어지던 시기. 제가 그 150편의 시나리오를 읽고 허락해야 제작할 수가 있었어요. 남들은 읽고 싶어도 구하지 못해서 못 읽는 것을 다 읽었으니 엄청난 행운이었죠. 월급까지 받으며 일했으니. 검열실에 들어가서 영화도 볼 수 있었어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시나리오를 두 편 정도 읽다가 점심 먹고 오후 2시가 되면 검열실에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필름을 자르기도 했어요. 2년 동안 하다 보니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많은 시나리오를 쉽게 쓸 수 있었던 게 이 직장 덕이죠."

 

  영화에서 드라마로 : 신성일 · 엄앵란이 주연을 맡은 청춘물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름. 동양방송(TBC)의 권고로 사극을 집필. 연산군의 일대기를 다룬 <사모곡>이 인기를 끌었는데 동시에 고증 미비라는 질타도 받음.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독파하며 역사 공부를 해 역사에 대한 인식과 정보의 깊이를 더해 감.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해 한국 역사소설의 잘못된 고증을 밝히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음.

 

  조선왕조 오백 년 : 1983년 MBC-TV에서 '조성왕조 5백 년' 전체를 연속 드라마로 이어가자는 야심찬 기획을 현실에 옮김. 제3화 <설중매>의 인기가 하늘을 찌름. 중단도 되었지만 전체 총 9년 동안 >조선왕조 5백 년>을 드라마로 완성함.

 

  "조선왕조 519년을 통틀어 가장 훌륭했던 여성 지식인 한 사람을 말하라면 저는 인수대비를 꼽겠어요. 조선왕조를 통틀어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설중매와 같은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은 같을 거예요. 친손자인 연산군이 던진 술상에 가슴팍을 맞는 시련을 겪죠. 조선조 최고의 지식인 여성이 몸소 체험해야 하는 비극. 이를 중심으로 한 것이 드라마 <설중매>이고 이어 이것을 『왕을 만든 여자』라는 소설로  만들었지요."

 

  역사의식 : 역사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 년>을 집필하면서 점점 역사문학이 국민이 갈 바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됨. 일본의 시바 료타로 같은 역사소설가가 일본의 근대를 바로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단, 그가 일본 군국주의 구축에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국가와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역사문학이라는 인식. 면암 최익현 선생을 다룬 희곡에 「너희가 역사를 아느냐」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런 때문.

 

  근황 : 최근 10~20년은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단체에서 강연 의뢰를 받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인기 강사로 활동함. 수년 전 폐에 심각한 병이 생김. 숨이 차는 증세로 강연을 중단함. 이대로 간다 해도 전혀 후회 없음.

 

  이름 :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문학가, 역사 이야기로 국가 정체성의 확립에 기여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고 애쓴 사람으로 남았으면 함.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화를 향해서 나아가는 데 좋은 요건을 다 갖추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에 때로 방향이 틀어지고 어렵게 되곤 하죠. 저는 그 사람들을 바로 교육시키고 바른 심성을 가질 수 있도록 고쳐 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런 작가이고 싶고, 후대에도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 신봉승 선생의 모든 유품은 강릉의 <손성목영화박물관>에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