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2016-5월호「이달의 말」
송수권 시인의 별세를 애도하며
임홍빈(任洪彬)/『문학사상』발행인
2016년 4월 4일, 시인 송수권이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를 흠모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 슬픔을 안겨주었다.
"저는 내 삶의 보람이 깃들어 있는 집, 내 영혼이 머물 수 있는 『문학사상』이 있어 언제나 행복합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쯤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한 힉 한 자 또박또박 정성들여 손글씨로 써보낸 편지의 사연은 대기업도 손실이 적지 않아, 하지 않는 월간 문예지를 이렇게 불경기의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에서도 한결같이 발행해내는 데 대한 위로와 동정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또 그가 폐암 말기의 투병을 계속 중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데 돌연 송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새삼 인간무상의 뼈저린 비탄을 금할 수가 없다. 1년이면 서너 차례 글월을 보내주던 그는 단 한 번도 와병 중이라든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전한 적이 없었다. 그의 편지에는 언제나 남도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정경이나 그의 정평처럼 알려진 '한국의 뻐꾹새 울음 깊은 정한'의 사연을 보내주곤 했었다.
누가 말했는지 잊었지만 사인 송수권은 그가 이니면 쓸 수 없는 막막하게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한 개천을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 같은 청순한 가락 그리고 "낮달의 포름한 향내가 서린, 그의 붓끝이 닿기만 하면 모두 새롭고 눈부신 시"가 된다는 평가를 받아온 시인 송수권, 한국 순수 서정시의 큰 봉우리의 하나였던 그가 그처럼 가까운 친지들조차,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소식조차 전혀 알리지 않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는 건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충격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인으로서의 탄생과 죽음이 송수권 시인처럼 기이하고 허망한 발자취를 남기고 떠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1974년 제1회 『문학사상』신인상 응모작 「산문에 기대어」는 그의 데뷔작이요,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소불명으로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뻔했다.
그 시를 응모할 무렵, 송 시인은 사랑하던 동생의 돌연한 자살로 가슴에 못이 박혀 전국 이곳저곳을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여관방에서 구겨진 백지에 써보낸 작품이었다고 한다. 무슨 일 때문에 왜 그의 여동생은 자살을 했는지 그 사연은 끝내 밝히지 않고 이따금 동생의 죽음에 대해 통한의 트라우마 같은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그리움을 시와 애끊는 시문으로 남기기도 했다.
흔히 송수권 시인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서정시에 담겨있는 부정적 허무주의를 남도의 서정으로 감싸고 민족적이요, 역사적인 원초적 정서로 부활케 하는 계기를 낳게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았다.
내 시의 출발은 상처다. 어린 시절 계모 밑에서 설움도 많이 맏았고, 배도 고팠다. 그러다 문학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제대 후 애틋했던 동생이 그만 자살을 하고 만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시 「산문에 기대어」는 그렇게 나왔다. 1975년 『문학사상』에 백지에 써서 응모한 것이 당선이 됐는데, 시에서 '누이'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사실은 남동생의 죽음을 슬퍼한 슬픈 노래였다.
아! 그랬던가. 그 동생의 죽음의 상처만 아니었던들 소월, 정지용, 김영랑, 서정주에 버금가는 더 휘황찬란한 명시도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감회를 지울 수가 없다.
새삼 송수권 시인의 타계를 애도하며, 하늘나라에 가서는 그 고달팠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고 더욱 아름다운 시를 써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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