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권두_가상 인터뷰/ 김춘수 : 김정임

검지 정숙자 2016. 4. 12. 01:57

 

     

    <권두_ 가상 인터뷰>

 

    김춘수 : 김정임

 

 

  김정임: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선생님께서는 평생토록 이 물음을 좇아다니시며 사셨는데 지금 계신 곳에서는 어떠신지요?

 

  김춘수: 내 문학은 이 물음과 연결돼 있네. 누가 나를 구제하겠는가 하는 정서라 할까 감정과도 같은, 실은 형이상학적 물음이지. 여전히 이 화두의 연장선상에 있네.

 

  김정임: "언제 시들지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누란」) 그 신비의 왕을 다녀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둔황을 꼭 한 번 다녀오고 싶다던 생시의 말씀이 기억

나는데요.

 

  김춘수: 이곳은 가만히 있어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희미하게 길을 열어준다네. 붉은 비단 조각을 덮고 잠든 옛 여자 미이라의 고운 눈과 눈썹을 보는 순간 까닭 모를 슬픔을 느꼈지. 80년 넘어 살아온 그 세월 동안 내가 본 미목(眉目)이 고운 여인들이 이별이란 감정 속에 묻혀 내 곁을 떠났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일세.

 

  김정임: 무의미 시에서 찾고자 하신 건 무엇인가요? 

 

  김춘수: 언어를 버리고 싶었고 언어로부터 해방을 절실히 희구했으나 결국 무의미 시라는 것도 무의미라는 의미, 즉 내용이 있었음을 인정하네. 극단의 순수시를 쓰고자 했네.

 

  김정임: 2004년 여름, 중환자실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계신 모습을 잠깐 뵙고 돌아왔습니다. 끝없는 심연을 향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김춘수: 몸과 영혼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네.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바다 위에 길이 나 있었던가. 죽음이 희망이 되었던 묘한 경험을 했네.

 

  김정임: 선생님은 어떤 시인이신가요?

 

  김춘수: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깊이 느끼고 이해하고 싶었네. 궁극적인 신비와 덧없고 속절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옮겨 적고 싶었네. 시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잃어버린 시간을 일깨워주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네.

 

  김정임: 예수, 소크라테스, 정몽주를 두려워하신 이유는요?

 

  김춘수: 이념 때문에 목숨을 버린 그 세 사람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려움이 앞선다네.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목덜미 어딘가가 섬뜩해지는 느낌이 든다네. 불가항력을 극복한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왜소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자책과 함께 말일세.

 

  김정임: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춘수: 국회의원 4년 하고 학교로 돌아오니까 제자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나를 배척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네.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나는 할 수 없이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네. 언젠가 다시 해명했으면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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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1922~2004, 82세)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 출생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 중퇴

  1946년 시화집 『날개』에「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경북대 · 영남대 교수, 영남대 문리대학장,

  한국시인협회장 등 역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냄

  시집 『구름과 장미』『쉰한 편의 비가(悲歌)』,

  시선집『처용 이후』『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등

  2004년 11월 29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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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6-4월호 <권두_가상 인터뷰> 전문                     

  * 김정임/ 대구 출생, 2002『미네르바』, 2008《강원일보》로 등단, 시집『붉은사슴동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