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절의 언어>
한국문학 국제화의 과제
이길원(전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장)
우리는 지금 한국문학의 국제화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에게 왜 노벨문학상이 주어지지 않느냐며, 한국 문학인들의 자질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한국 문학의 해외 번역 사업이 부진한 탓이라고 자조하기도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국가에서도 한국문학번역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하여 한국문학 세계화를 위한 번역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효율성에 관해서는 의문입니다. 번역된 작품들이 세계 문인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 보고서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국내 작가들의 신청을 받아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거쳐 해외 출판사와 계약하여 번역 출판을 지원해 준 작품 수는 1,065권으로 32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소개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2015년 6월 현재). 또한 개인적으로 번역 출판되는 작품도 수백 종에 달합니다.
그러나 세계문학인들의 관심도와는 별개로 출판되고 있어 그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출판 및 번역료를 지원받아 출판된 해외 출판 작품들이 독자 또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손에 들어가 읽히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실적은 있으나 창고에 잠자고 있는 번역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2010년 '국제PEN 린츠 대회'에 참석했을 때,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진 몇몇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나는 "왜 노벨문학상은 서구 유럽 사람 중심으로 시상하느냐. 동양에도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동양 작가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내게 "노벨문학상이 작품성만으로 평가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레 질문하는 것입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노벨은 스스로 자신이 발명한 폭발물로 인류와 지구를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류 평화와 지구 보존에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보답하라고 만든 재단이 노벨 재단이다." 그러면서 "세계에는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3천 명도 넘는다. 우리는 한 작가의 행동과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솔제니친이나 헤밍웨이, 헤르타 밀러 등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PEN 회장들인 당신들이 노벨문학상을 추천하지 않느냐. 그런 관점에서 추천해 봐라. 왜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대답을 잃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추천할 만한 작가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후 나는 프랑스 시인 슐리 프뤼돔(Sully Prudhomme)이 1901년 첫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2014년 패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까지 109명의 수상자 모두의 작품세계를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어떤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입니다. 수상자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사하던 나는 심사위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작품 성향에 대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해악을 고발한 작가들이나, 인권 탄압을 일삼는 독재자에 맞선 인물들의 작품, 또는 평화를 주창하는 반전주의자들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939년, 히틀러에 의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세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1945년 전쟁은 종식되었고, 세계 문인들과 양식 있는 인사들의 반전(反戰)과 평화를 주창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졌습니다. 전쟁의 해악을 고발하고, 억압받고 수난 당하던 인류의 보편적 인권 회복에 대한 열망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세계 문학의 관심도 그런 방향에서 조명되고 있었습니다. 총 109명의 수상자들 중 32명의 수상자가 바로 이런 작가들입니다. 1/3에 해당하며, 2차대전 이후에는 거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그 외의 수상자도 인간 본성에 관한 통찰을 표현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크고 작은 폭력과 전쟁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문제나 인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도 많습니다. 국제PEN투옥작가위원회에는 자신의 글로 인하여 투옥되거나 살해되는 수많은 각국의 사례들이 매년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동 · 남아메리카 · 아프리카 등 제국에서는 문인이나 기자들이 투옥되거나 살해되는 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2차세계대전이 종식되고 광복을 맞은 한반도는 현재 극명한 체제적 차이를 보이는 남과 북이 대치 상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한 대한민국과는 반대로 공산주의 체제로 출범한 북한은 심각한 인권 탄압과 열악한 경제 문제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남한도 1970년대 제5공화국 시절,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든 업적이 있었으나, 다른 한편 그 과정에서 군부정치에 반대하는 많은 문인들이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투옥 작가들의 작품들은 작품의 질적 수준 여하를 떠나 세계 문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번역 소개되어 세계적 작가로 조명을 받았습니다. 국제PEN대회에 참석하면 다른 나라 작가들 중 아직도 '한국의 작가'하면 그 당시 억압받던 작가들을 떠올리며 안부를 묻곤 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자신의 글로 박해받는 작가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북쪽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어떤 작가가 투옥되고 박해받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폐쇄 국가이면서 지상 최악의 빈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계 문인들은 북한의 그런 현실과 북한 작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해외 작가들이 북한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문의해 옵니다.
문학의 국제화는 세계의 양식 있는 문인과 지성인들이 보여주는 관심의 정도에 따라 좌우됩니다. 관심을 받는 작품은 번역을 요청하지 않아도 번역되어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국제 문학계에서 북한 작가의 글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작가들 중 누군가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같은 인권 실상을 고발한 작품을 발표한다면 단숨에 세계 문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의뢰하지 않아도 다투어 번역될 것입니다. 아마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될 수 있습니다.
인류 평화를 지향하고 지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작품들이 세계 문인들과 지성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환경 문제를 위시해 전쟁과 테러, 핵 문제 등 세계 지성인들의 관심 문학이 조명받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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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인』2016-봄호 <이 계절의 언어> 전문
* 이길원/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노을』『헤이리 시편』등.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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