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미래파 논쟁과 그 이후/ 전해수

검지 정숙자 2016. 2. 26. 21:33

 

 

  『月刊文學 』 2016_ 3월호 <기획특집/ 젊은 한국시의 변혁>

 

 

    미래파 논쟁과

   그 이후

         시의 미래와 미래의 시

 

 

    전해수 / 문학평론가

 

 

 

  권혁웅의 「미래파  -2005년의 젊은 시인들」(2005)에 처음 제기된 '미래파' 혹은 '미래파 시인' 군은 1980~90년대적 시적 감수성과 문학적 태도, 언술방식과는 매우 다른  '새로움'의 기표로 우리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많은 평론가들이 권혁웅이 제기한 '미래파'란 명명과 진단에 찬동하거나 반론하면서 미래파를 둘러싼 논의가 몇 해 동안 이어졌다.

  '미래파'는 새로운 서정(이장욱), 환상적 서정(김진수), 진화하는 서정(김수이), 뉴웨이브(신형철) 등 고쳐서 불리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그 명명을 인정하면서 권혁웅이 제시한 미래파 진영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속출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다른 미래(이경수)를 위한 비평적 담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경수, 고봉준, 하상일 등은  '미래파'에 관심이 집중되는 불균등한 상황을 비판하고, 미래파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대안이 된다"는 기대치(권혁웅)에 대하여 우려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당시 미래파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은 식을 줄 모르며 연이어 발표됐고, '미래파'의 명명 역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등 그 영향력은 상당기간 유효하게 작용했다. 미래파를 중심으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진단한 글도 있었으며 (김홍중, 심보선), 최근에는 학위논문까지 발표되는 등 (이병철, 2014) 그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미래파 논쟁 이후 10년이 경과했다. 2016년의 현 시각으로 미래파에 관한 냉정한 진단과 평가는 적잖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2000년대에 주목받게 된 소위 미래파는 환상성, 혼종성, 그로테스크, 퀴어적 미학, 서브컬처, 불온함, 자기갱신, 동성애코드 등 모든 "추(醜)와 불협화음"의 미적 감각(권혁웅)이 그 "모호함"이나 "난해성"의 전언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감각"의 우위를 보여주는 미학적 언표로 과연 작용했는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지,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1. 미래파와 전위

  미래파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등단하여 2000년대에 첫 시집을 낸 1970년대 출생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범박하게 정의되었다. 한 평론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사용된 미래파는 한국시의 미래를 짊어질 2000년대의 젊은 시인들로 호명되면서 이들의 시가 표방하는 전위적 "새로움"이야말로 우리시의 대안이 될 '미래형'의 시로 평가했다.

 

  최근 몇몇 젊은 시인들의 시를 살펴 우리 시의 미래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권혁웅, 『미래파』,150쪽).

 

  처음으로 돌아가자.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생산하는 시들은 결코 요령부득의 장광설이거나 경박한 유희의 산물이 아니다. ……세대가 바뀌면 그 세대에 통용되던 미학과 세계관이 바뀐다.  ……다르게 말해서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권혁웅, 『미래파』,171쪽).

 

  위 인용문에서 "우리 시의 미래"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 될 시인들이 바로 미래파로 이해된다. 물론 이에 대입되는 미래파의 개념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전위 예술로서의 미래파의 속성과는 대부분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에 속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 경향이 전위(예술)성을 띤다고 보고 '미래파'라 지칭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미래파'가 표방하는 전위는 매우 정치적인 것으로 한국시의 전위와는 상당부분 다르다. 서구의 미래파가 이탈리아 작가들의 적극적인 미래파 선언에 의해 탄생한 것을 안다면 그 개념의 유사성은 매우 미진하다. 서구의 미래파가 일군의 이념적 '운동'이었다면 한국의 미래파는 비평에 의해 재단되고 명명되어진 하나의 (문학적)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위의는 미래파로 불리면서 시적 모호성과 난해성이 제대로 의미규정이 되지 못한 채 "새로움"의 코드로 덮씌워져 지나치게 우상화된 점이 있으며, "새로움"의 의미조차도 과도한 형식적, 언어적 실험에 내맡겨졌다. 미래파는 처음 평론에 의해 긍정적으로 제기된 만큼 상당부분 우호적인 위치를 차지해가며 현대시의 가치판단을 바꾸어갔다.

  미래파 용어사용의 부정확성은 미래파 시에 관한 찬반양론의 입장을 떠나서 평론가와 시인들 사이에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크게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강력하게 부각하지는 못했다. 미래파는 2000년대 시문학의 주류가 되어, 문학적 균형감을 잃어버리고 시안(詩眼)을 흐리게 했다. 실상 이 용어는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되고 (지금도 인정받고 있는 듯 여겨지는데) 그 문학적 사회적 파장이 아직도 깊고 넓다.

  실제 미래파는 20세기 유럽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전위운동의 하나였으며,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미술계에서 눈부시게 활약했던 유파였다. 미래파선언을 통해 새로운 예술영역을 확보하고자 했던 유럽의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적 전위예술을 새로운 예술적 모티브로 여기고 예술적 혁신을 꾀하고자 했다. 이 의도된 예술집단 미래파는 인생- 예술- 덧없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낯선 것을 통하여 예술의 규칙 또는 예술 자체를 뛰어넘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보인다(지오반니 리스타). 이처럼 미래파는 일종의 예술운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작가들 사이에서 스스로 문제제기 되고 활동되었던 바 유럽의 20세기 예술계에서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를 상당하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이탈리아의 미래파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우리 시의 대안으로 삼은 것"(신형철)이 권혁웅이 설정한 미래파였다고 말하지만, 유럽의 미래파 운동과는 (느슨하게라도) 견주어 보기는 어렵다. "느슨하게 연결"되었다기보다는 '미래파'라는 단순하지만 기발한 언어차용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 개념의 확보가 시의 '미래'라는 의미를 언어에 담아 기댄 바가 컸고, 그 의미가 부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파 용어 사용 이후 (미래라는 언어적 의미에 의해 더욱) 그 파장은 놀랄 만큼 빠르게 번져 갔던 것이다.

  실상 미래파로 호명된 시인들조차 미래파가 무엇인가 어리둥절해 했는데, 이를 통해서도 미래파 용어설정의 모호함과 경계의 부정확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파는 평론에 의한 평론의 꼬리물기로 그 자리를 확고하게 구축해 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래파는 한국시의 현역을 담당해온 기존의 중견시인뿐 아니라 미래파에 포함되지 못한 소외된 젊은 시인 군을 낳는 등 이후 문학계에 또다른 부정적 영향력을 끼쳤다. 미래파는 이와 대립하는 '과거파'를 연상시켜, 전통 서정시에 대한 가차없는 가치절하로 연결되었다. 시의 역사를 담당해온 서정시 군은 미래파와 대척되면서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고 마는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반면 "새로움"을 지닌 시인들은 '미래파'로 집약되었다.

  미래파 논쟁은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한국의 미래파는 실제로 없었거나 지금도 없다. 더구나 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시(미래파)라니 터무니없다. 정확히 말해 시의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다. 미래는 혹은 미래 시는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며 대상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래파는 그 대상과 분명한 예술적 지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만 한국의 미래파는 과장된 유행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미래파는 논쟁 아닌 논쟁이 되어 유명무실해졌다.

  과거의 1980~90년대 시에 반하여 미래파 논쟁이 뜨거웠던 만큼 당시에는 어떤 시인이 미래파 시인에 속하느냐가 관심을 끌기도 했으며, 주목할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이는 미래파로 명명되는 것이 시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판단하여 젊은 시인이라면 당연히 미래파의 일군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이상한 초조감을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아류 시는 그러한 시각에서 배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미래파에서 지향하는 '새로움'의 기준은 과거의 서정시를 탈피하는 것이 되었고, 미래의 한국시는 미래파에 경도되어 흔들이게 되었다.

 

 

  2. 미래파 시인과 미래형 시

  문학평론가 권혁웅이 처음 거론한 미래파 시인은 장석원, 김민정, 유형진, 황병승이었고, 이후 "주류 시학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그래서 기존 시의 독법으로는 잘 파악되지 않는 새로운 시적 기술론"으로 그 범주를 넓힌 후에 거론된 시인은 김경인, 김경주, 김근, 김민정, 김병호, 김언, 김이듬, 김행숙, 박판식, 송승환, 신동욱, 신해욱, 여정, 오은, 유형진, 이근화, 이기인, 이민하, 이승원, 이영주, 이은림, 이준규, 장석원, 장이지, 정재학, 조연호, 진수미, 최치헌, 최하연, 하재연, 황병승 등이었다. 그의 포괄적 기준이었던 "새로운 시적 기술론"에 의하면 앞으로 "새로운" 미래파 시인은 더욱 늘어나거나 바뀔 전망이다.

  "새로움"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묶인 미래파는 또다른 "새로움"에 의해 얼마든지 업데이트되거나 제외될 수 있다. 미래파 시로 호출된 시 혹은 시인들은 그 "모호함"과 "난해함"이 대중과의 소통불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었기에, 과연 그 '미래'란 지칭이 문학 소수자만을 위한 미래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렇다면 새롭다는 그 미래적 혹은 미래형 시의 기준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2000년대 한국시의 변화는 황병승 현상(하상일)을 만나게 되면서 뚜렷해진 점이 있다. 황병승의 시를 통해 이를 논해 보겠다.

 

  포옹을 할 때마다 나의 등 뒤로 무섭게 달아나는 그대의 시선!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시코쿠, 시코쿠,

  붉은 입술의 도마뱀은 뛴다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불 속으로 사라진 개를 따라

  쓰러진 저 늙은 여자의 침묵을 타 넘어

 

  뛴다, 도마뱀은

    -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부분

 

 

  황병승 시의 현실적 의미는  하위문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저항과 보편적 가치의 위계를 넘어선 탈주의 미학에 있다. 황병승은 독특한 언어체계와 언어관습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퍠쇄적 시 의식을 쇄신한 데에 그 특징이 있을 것이다.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충돌과 동성애적인 코드를 통한 혼종성의 실현은 황병승 시의 독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연(聯)뿐만 아니라 행 사이에서도 그 간극이 너무 멀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어도 제목에서 유추한 여장남자 시코쿠의 존재를 조금 이해할 뿐이다. 우리가 종전에 알던 시의 규칙 즉 행과 행의 친밀한 거리나 연과 연의 유대는 이제 좀 머쓱해졌다. 평론가의 해설이 필요해진 시는 더 이상 편안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미래파는 장석원의 시를 통해 다성성을 이야기하고, 김민정의 시를 통해 시의 잔혹성과 유머를 언급한다. 후일 2006년 「미래형 시로의 여행을 위한 히치하이킹 안내서」1, 2에서 권혁웅은 미래파 대신 미래형, 미래적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한다. 그에게 미래파는 이제 '미래적'이라는 관형구로 바뀐 것이다.

  환상성, 잔혹성, 만화적 상상력 외에도 황병승의 시에서도 보여지듯이 서브컬처(subculture), 오타쿠(오덕후) 등 21세기를 대변할 시형식의 변화 및 새로운 문화적 관심은 다종의 언어적 실험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 가운데 가볍고 자극적인 세부 요소들은 자유로운 것, 소수적인 것, 하위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탈권위적인 것과 탈서정적인 것을 표방하기에 이른다.

 

 

  3. 미래파 이후 : 시의 미래와 미래의 시

  그러나 미래파 논쟁 이후 미래파 시와 미래파 시인에 대한 과도한 평가에는 반성이 있어 왔다. 미래파를 옹호했던 평론가는 미래파의 실패를 언급하며, 미래파라는 이름의 실패에 대해 먼저 진술한다. (신형철)권혁웅이 내세운 미래파의 개념은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신념의 중간, 개념어와 수사의 중간"에 놓인 "잠정적 명명"이란 것이다. 그는 "뉴웨이브들을 미래파라 명명한 것은 최초의 실패였고 의미있는 실패였다"고 재평가한다.

  그렇다. 미래파의 "새로움"은 언제나 다른 새로움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미래파란 명명은 불완전한 명명에 다름 아니다. 아니다. 애초에 미래파란 호명은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했다. 비평의 잣대가 모호한 언명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반성적이다. 한 지적처럼 "새로워서 좋다"가 아닌 "좋은데 새롭다"로 접근해 본다면 "새로움"의 위상은 달라질 것이다. 좋은 시와 새로운 시는 어떻게 연관되고 연속될 것이냐에 따라서 그 평가는 상당히 달라진다. 새로움을 일방적으로 추수하다 보면 실체를 놓치기 쉽다. 시가 서사와 다른 점은 시가 지닌 고유한 실체 '서정'에 있다.

  새로움을 뒤엎는 다른 새로움은 좋음에 힘입어 그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모두를 놀라게 한, 2013년 미당문학상 수상자 황병승은 이 상을 수상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전위시는 시 장르의 영역 내에 편입되는 차원에서의 새로운 것일 뿐임을 증명한 셈이다. 수상작 「내일은 프로」는 이별의 심상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기존의 서정이 작동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미래파의 아이콘 황병승의 문학상 수상이 의미하는 것은 새로움의 가치를 자유롭게 창출하는 미적 수사 안에 서정성이 여전히 존재할 때 시의 본위는 빛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미래파 논쟁의 의미는 비평의 우위가 시단의 전반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문학계의 자기 반성을 던져 준다. 이것은 미래파가 하나의 미학에 관한 담론으로 남게 된다면 그 담론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미래파가 인지되고 호명되는 과정을 통해 시의 본원적 의미가 오히려 부각되었으며, 서정성을 넘어서 시적인 것의 본질을 다시 인식해 보려는 관심과 열정이 미래파 시로 불린 일련의 시편들에 내재되어 드러난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실상 미래파라 불린 시인들은 미래파의 정체도 모른 채 미래파의 역할을 타의(평론)에 의해 부여받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21세기 한국시문학사에 있어 미래파 논쟁은 담론이 필요했던 2000년대 문단을 활발한 논의의 장으로 이끈 공적은 있다. 2000년 이후의 시 유형이 상당히 달라지고 있으며, 그 평가 또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파 논쟁은 충분한 자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현대시의 존재와 의미 안에서 21세기 시 또한 그 명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의 미래 혹은 미래의 시는 기존의 시에서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미래파 이후 또다른 새로움으로 발견될 시의 요소는 무엇일까. 미래파 논쟁 이후 우리가 논할 수 있을 시의 존재 의미는 또한 무엇이 될까.

  미래파가 아니라 해도 황병승의 좋은 시는 남을 것이다. 김민정의 시 역시 김민정이라는 시인의 자성을 시로 표출하면서 우리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궁극의 시적 가치는 소통이다. 소통되지 않는 시에 대한 아량은 평론가의 몫이 아니다.

  미래를 짊어질 '미래파 시와 시인'은 결정되었는가. 아니다. 그 어떤 시인이라도 미래 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시적 방식과 독자와의 소통으로 그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미래는 모든 시인에게 열려 있다. 미래파 시인은 없다. 모든 시인에게 미래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 미래성을 말할 수 있는지를 시인(詩人) 스스로 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여전히 시의 새로움에는 소통이 배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의 변혁에도 공감할 수 있는 독자는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