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새해를 열며/ 강기옥

검지 정숙자 2016. 3. 21. 00:19

 

 

 『가온문학 』 2016_ 봄호 / 권두언

 

 

    새해를 열며

 

    강기옥

 

 

  비발디는 사계절의 신비를 섬세한 리듬감으로 묘사해냈다. 겨울의 장중한 느낌이 지나면 봄은 아지랑이 같은 운율로 재잘거리듯 맑은 날의 꿈을 연주한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경쾌하게 사뿐사뿐 다가오는 봄의 속성을 연주한 것과는 다른 비발디만의 특징이다. 소리를 듣는 음악이지만 봄의 경치를 보는 듯한 느낌은 청각의 시각화를 통해 감흥을 자아내는 시(詩)의  공감각적 기교를 능가한다. 봄에 담긴 의미가 워낙 심오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로 불만을 토로한다.

  전한시대 원제(元帝)의 궁녀였던 왕소군이 흉노족과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던 불운을 동방규가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의 3연 중 1. 2구에 나오는 용어다. 호나라에 인질처럼 끌려왔으니 꽃이 피어도 꽃처럼 보일 리가 없었겠지만 메마른 땅에 화초가 한나라의 것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동방규는 왕소군의 심정을 화초가 없는 오랑캐 땅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심정을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으로 담아낸 것이다. 

  봄이 왔는데도 춘래불사춘이라는 탄식이 곳곳에 들린다. 그러나 문인에게 늦은 개화는 그 나름대로, 늦추위는 늦추위대로 의미가 있기에 그것이 지닌 내면의 가치를 읽고 찬미한다. 호지무화초가 아니라 시심에 화초가 피어나지 않는 자신의 심정을 탄식한다. 즉 봄인데도 시 한 편 제대로 쓸 수 없는 무딘 감각을 탄식할 뿐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려움을 문학적 감상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시인이요 문학인이기 때문에 꽃이 없어도 봄이요 볼거리가 없어도 봄인 것이다.

 

  '봄'은 '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다. 볼거리가 많아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는 형의 명사로 굳어진 것이 '봄'이다. 겨우내 땅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이 여릿한 얼굴을 내밀고, 마른 가지에 꽃이 피어 불거리를 많이 열어놓은 계절이라서 '봄'이라 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봄에 나들이가 많은 것은 죽음 뒤에 열린 생명의 신비를 보기 위함이다. 그래서 문학이나 음악, 미술, 연극, 사진 등 각종 예술이 봄이면 보다 내용이 신선하고 삽화와 사진도  상쾌하다. 모든 것이 얼어 붙은 경지에서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하는 봄이라서 기대가 크지만 이 계절에 문인들은 작품으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아름다운 꽃과 같은 외형적인 볼거리도  좋지만 추위를 이기고 새 생명을 돋우는 봄의 의미처럼 부활의 가치를 지닌 애용적인 면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봄이어야 문인으로서의 봄인 것이다.

 

  그동안 『가온문학』이 독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문인들끼리도  볼거리를 공유하는 '봄'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 바라기는 모든 문예지들이 독자들에게 하얀 눈 속에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와 같이 청순하면서도 강인한 생명체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봄'이기를 바란다. 그 봄의 향연에서 독자와 작가가 공유하는 생명의 계절이기를 바란다. 독자의 손에 책을 쥐게 하는 것은 모든 시인과 작가의 책임이다. 홍수 속에 물 걱정하는 사태가 문학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역량이 있는 볼거리(읽을거리)를 생산하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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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옥/ 『가온문학』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