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의 풍크툼]병아리 떼 종종종
장승리
다섯 개의 컵에 우유를 붓고 독약을 탔어. 한 명씩 차례대로 자기 몫의 독약을 마셨어. 아무도 주저하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됐어. 마시지 않았어. 이 일을 주도했지만 처음부터 마실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아무도 날 원망하지 않았어. 순간 모두를 살리고 싶었어. 황급히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어. (그중 한 명이 차에 타기 전에 자기가 키우던 병아리 네 마리를 길 위에 풀어 줬어.) 저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걱정이 4에서 4로 늘어났어.) 뒷좌석에 마주 앉은 네 명 중 누구도 조바심 내지 않았어. 나 홀로 애가 탔어. 액셀을 밟고 또 밟았지만 어느샌가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어. 다 왔는데 응급실이 코앞인데 납빛으로 변한 얼굴들을 번갈아 가며 때리고 또 때렸어. 꼼짝도 하지 않았어.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내 몫의 독약이 남아 있어.
*『무크 파란』0001호(2015.10.30.)/ 'essay'에서
* 장승리/ 2002년 《중앙일보》를 통해 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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