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날개
금시아
한 줄기 빛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나를 사선으로 자른다
빛의 기둥 하나 깊숙이 박힌다
눈꺼풀 속의 잠결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고 빛의 원통 속으로 수많은
별빛들이 먼지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빛의 기둥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먼지는 닻을 내린 듯 웅크리고 있
는 사선으로 툭 잘린 내 몸을 타고 애벌레처럼 올라온다
내 온몸에 솜털 같은 먼지 날개 돋는다
살아 있다면, 날갯짓이다
꿈틀거리는 날개는 꿈을 꿀 수 있지
눈은 더욱 초롱초롱하겠지
사냥꾼의 총신 끝에서 파르르 떠는 속눈썹 같은 날갯짓,
보이는 곳만 살아있다면 보이지 않는 날개는 죽은 것일까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젖힌다
온 방 구석구석에 햇빛을 투사한다
내 몸이 재빨리 봉합된다
눈부신 정적, 그 많던 날개는 어디로 갔을까
사물의 뿌리들은 어둠 속으로만 파고들고 구석을 들춰보면 은밀한 곳에서
보일 듯 말 듯 먼지들 어느새 날개 접은 하루살이처럼 나뒹군다
먼지는 죽고 나서야
장렬하게 뭉치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죽음은 스미거나 날아가고
먼지의 날갯짓은
'난파, 혹은 최고의 상실'*에 이르는 입적이다
* '말라르메의 시 「짓누르는 구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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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2015-겨울호 <예술가 신작시>에서
* 금시아/ 2011년 <여성조선문학상> 대상, 2014년『시와표현』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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