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2015-겨울호 <시집 골라 읽기> 김성조_불화(不和)의 세계와 자기 정화의 시적 변용(발췌)
나무가 새를 놓을 때
심언주
날개와 날개 사이에 새가 끼어 있다
새는 날개와 날개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날개는 새에게 너무 큰 매듭이다
날개는 새를 마음대로 여닫는다
날아가는 것도 부딪히는 것도 날개가 선택한다
날개가 팽팽히 새를 당겨
새는 곧 양분될 듯하다
하늘과 땅 한가운데 끼어
새들이 펄럭인다
하늘로 가라앉으며 구명 신호를 보낸다.
- 시집『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2015)』에서
'날개'는 새의 일부분이고 새의 추동에 따라 그 크기와 모양, 가고자 하는 방향과 활용범위가 구분되어진다. 따라서 '날개'는 엄밀히 새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그 하나로 독립적인 존재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날개의 주체는 새이고, 이 주체에 의해 스스로의 지향성을 응집하고 비상의 에너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위 시편에 묘사되고 있는 '새'는 오히려 그 반대적 입장에서 "날개와 날개 사이"에 끼어 있고, "날개와 날개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른바 '날개'의 무게에 종속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날개는 새에게 너무 큰 매듭"이면서 "새를 마음대로 여닫"기도 하는 억압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은 날개가 새에 비해 지나치게 몸집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날개가 새의 몸피를 잠식하면서 본질을 왜곡하는 불균형의 형태로 변형되어버린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읽어야 할 대목은 왜소해진 자아(새)에 대한 인식이다. 시인은 두 개의 구도 즉, 팽창해버린 날개와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새(자아)에 대해 숙고한다. 새와 날개는 상호 협조적 혹은 발전적 관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질서를 지키고 제 본분의 영역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이러한 질서를 파괴하고 있고 그 정도가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따라서 급기야 "구명 신호를 보"내야 할 만큼의 위기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새는 날개를 펼쳐갈 중심을 상실했고 날개(욕망)는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펄럭임을 지속한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혹은 우리가 조장한 수많은 구성물들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훼손시키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화를 이뤄가야 할 미적 체계는 무너지고 불안정한 구조물들만 상처의 형식으로 다가온다. 위 시는 시인의 불화의 배경과 그 모순성이 상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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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조/ 1993년 『자유문학』으로 시, 2013년 『미네르바』로 평론 등단. 시집『새들은 길을 버리고』,『영웅을 기다리며』등. 학술저서 『부재와 존재의 시학-김종삼의 시간과 공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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